2020년 2월 10일
참을 수 없는 가려움
겨울이면 건조해지는 내 얼굴에는 아토피라는 울긋불긋한 꽃이 핀다. 매년 피는 이 꽃은 30년 동안 보아왔음에도 익숙해질 수 없다. 좋은 피부과를 찾아다니고, 레이저, 한약, 친환경 연고를 발라도 매년 꽃을 피운다. 어떤 약을 낫지 않는 아토피에 올 겨울도 하루를 고통으로 시작하고 가려움으로 마무리한다.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올라서 누런 피부를 붉게 잠식하면 반들반들했던 피부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꺼칠꺼칠해지고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찾아온다. 눈을 떠 있는 동안은 로션을 덧바르고 손끝으로 톡톡 치면서 어떻게든 가려움을 해소시키지만 잠이든 사이에는 말을 듣지 않는 내 손이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벅벅 긁어댄 탓에 아침이면 얼굴은 더욱 황폐해져 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만 해도 쩌억쩌억 찢어지는 피부 때문에 나의 하루는 고통스럽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 고통은 아토피가 있는 사람만이 안다. 짜증과 억울함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고통은 좀 먹는 벌레처럼 하루의 에너지를 빨아먹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볼 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든다. 나는 아토피에서 벗어나고 싶다. 오랜 저주를 끊고 행복을 찾은 슈렉의 피오나 공주처럼 말이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할머니는 내 몸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서 여러 개의 화분에 알로에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꼭 샤워를 시키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시원한 알로에를 반으로 잘라서 오금 쟁이, 팔오금, 목 주변 등, 살이 접히는 부분에 붙여 주시곤 붕대로 감아주셨다. 나는 전쟁 영화의 환자라도 된 듯 대나무 카펫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다 잠들었다. 무더운 여름임에도 시원한 알로에 덕에 피부가 뽀송뽀송한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수고로 나는 어린 시절 아토피가 있는 줄 몰랐었다. 피부가 가렵지도 않았고 갈라지지도 않았다. 그 시절, 그 손길이 아직도 그립다.
내가 서울로 이사 오면서 나는 아토피가 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눈꺼풀이 붉게 물들어 아이쉐도우를 칠한 것처럼 되었다. 그다음에는 목이 거칠어지고 마지막으로 입 주변이 붉어졌다. 가려움은 부위가 바뀔 때마다 몇 배나 더 심해졌다. 그렇게 나는 나를 괴롭히는 아토피와 30년을 지내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다’라는 말처럼 어떤 방법으로도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세월을 동고동락했으니 어쩌면 가족일 수도 있겠다. 이놈의 아토피는 스테로이드를 때려 부으면 좋아지지만 끊으면 바로 올라온다. 때로는 리바운드되어서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독한 약을 계속 쓸 수 없고, 친환경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기에는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현실적으로 부담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들은 한결 같이 스테로이드가 독하지만 조절해서 잘 쓰면 효과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테로이드는 1-7단계까지 나누어져 있다. 7단계의 스테로이드는 강한 강도로 손톱, 발톱, 손바닥, 발바닥 같이 피부가 두꺼운 곳에 사용하고 얼굴, 눈꺼풀에 쓰이는 스테로이드는 약한 강도의 1-2단계이다. 요즘 의학이 발달해서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말이다. 항염은 살균과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살아있는 무언가를 없앤다는 말이니 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독의 본질이 중독과 파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효과적’이라는 형용사 아래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짓밟히고 배제되었는지 역사가 보여준다. 일시적으로는 효과적으로 치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축척되는 독성이 어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레이철 카슨은 자신의 책 <침묵의 봄>에서 효과적이란 말에 의존해 화학 약품을 환경에 분사한 결과가 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지구를 돌며 온 세계에 효과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스테로이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쓰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어떤 부작용으로 돌아올지 모를 불안감이 있다. 또한 미래에 일어난 부작용을 제쳐두고서라도 약을 끊으면 아토피가 재발할 것을 알기에 굳이 약을 바를 필요를 못 느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킬러 크록처럼 갈라진 피부를 마주할 때마다 스테로이드를 때려 붓고 싶은 욕망이 든다. 뽀얀 피부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 가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은 열망이 뒤섞여 있다. 몽유병 환자처럼 잠이 들면 가려움을 참지 못해 목에 핏자국과 흉터를 만들고 얼굴에는 손톱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다.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당장의 이득을 취할지, 지금의 고통을 참아내고 미래의 안정을 취할지, 그 사이에서 나는 매일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