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이름이 없던 시절.
바리스타란 말이 없던 시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없진 않았겠지만 우리 동네엔 없었다. 그땐 뭐든 좀 덜 예쁘고 좀 더 정직한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린다고 나라가 술렁였고 우리는 교복을 벗자마자 ‘밀레니엄’이란 이름의 셔츠를 입었다. 세상은 점점 미래처럼 굴었지만 나는 아직도 과거를 바지 뒷주머니에 접어 넣고 다녔다. 삐삐는 묻혔고 그 자리를 24화음 벨소리가 차지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새 시대의 전령이라 불렀고 나는 그냥, 벨소리가 기분 나쁘게 또랑또랑한 시대라 기억한다.
-녹두거리
대한민국 수재들이 모인다는 지적 허세와 진짜 똑똑함이 반반 섞인 구역. 형법, 민법, 형소법, 민소법, 헌법… 책 제목만 들어도 속이 좀 더부룩했다. 그들은 커피를 시켰고 그걸 마시는 얼굴은 대부분 시험지를 삼킨 표정이었다.
거기엔 수현 누나도 있었다.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를 ‘호르몬의 노예’라 부르던 누나. 그녀의 24화음은 매일 아침 나보다 먼저 출근했다.
“정우야, 커피 좀 가져와!”
명령은 언제나 자세가 흐트러진 채로 나왔다. 츄리닝은 반드시 무릎이 나와 있었고 머리는 어떻게든 묶여 있었으며 그 묶인 머리보다도 더 헝클어진 말투를 갖고 있었다.
“누나, 점심은 드셨어요?”
나는 어쩐지 묻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누나는 늘 딱히 궁금하지 않은 걸 대답했다.
“너 나한테 관심 많구나?”
나는 뭐든 관심으로 오해되던 나이였고,
누나는 뭐든 우습게 넘기던 나이였다.
그 시절 테이크아웃 커피는 아직 이미지였다.
손에 종이컵을 들고 걷는 사람은 어딘가 '뉴요커' 같았고 '별다방', '콩다방'은 브랜드라기보다 청춘의 구역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카페를 만들었다. 별다방 직원, 콩다방 직원, 어딘가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던 이십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음료 조합을 자랑했고 새로운 메뉴를 실험했다. 가끔은 사람 대신 레시피에 반했고 누군가는 레시피를 공유하다 연애도 했다. “우리도 껴줘요~”라는 말 한마디면 입장 가능. 약간의 테스트 몇 개의 질문 그리고 바로 멤버가 되는 식이었다.
내 아바타는 늘 풍성한 이파리를 달고 있었고 안에 담긴 지루함과 푸르름은 이상하게 화면에서도 소리가 났다. 청춘은 늘 푸르지만 늘 고요하진 않다. 그 안엔 지루함도 있었고 허세도 있었다. 물론 사랑 같은 걸 흉내 내는 감정들도 있었다.
오공주파라 불리던 누나들은 중앙대, 경희대, 연세대, 성균관대, 이대 출신으로 구성된 법학 스터디 모임이었다. 결국엔 모두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알려준 건 수현 누나의 전화였다.
“정우야, 잘 지내?”
“어, 누나! 와, 오랜만이네요.”
여전했다. 하고 싶은 말부터 하는 사람.
“무슨 일 생기면, 여기로 전화해.”
이번엔 장난기가 없었다. 목소리엔 기운이 빠졌고 말투엔 직장인의 음절이 묻어 있었다. 누나는 나보다 두 살 많았다. 내가 누굴 좋아했는지도 누가 날 그냥 동생으로 봤는지도 애매한 채로 흘러간 시절이었다. 후배 하나를 소개해주며 그녀는 말했다.
“얘 잘 만나봐. 너 인생 그날로 핀다.”
경북 어딘가 큰 과수원집 딸, 경희대 법대 수석. 수현 누나는 중앙대 법대 수석. 그 시절 스물두세 살의 여자들은 입영열차 기다리는 나에게 결혼 얘기를 농담처럼 진담처럼 흘렸다. 누군가는 평생 놀고먹게 해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것을 진심으로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지만 그때는 꿈과 야망이 내 나이보다 많았다. 그래서 군대 가는 꿈보다 과수원에서 길을 잃는 꿈을 더 자주 꿨다.
오공주파는 해장한다고 아침마다 카페에 들렀고 그들은 뒤통수를 치며 인사했고 내 어깨에 턱을 올려놓으며 안부를 물었다. 그들이 대단한 직업군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단지 에스프레소를 뽑으며 세상이 내 손끝에서 끓고 있다고 믿었다. 다음 카페에서는 여름 신메뉴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 레시피를 공유했고 '별다방'의 지윤이 물었다.
“이거 써도 돼요?”
며칠 뒤, 메일이 왔다.
“고마워요. 본사에서 이거 쓰기로 했대요.
저, 직급도 올랐어요. 보너스도 받고요.”
나는 혼자 커피를 내리며 생각했다.
'청춘이란 건,
가끔은 내가 만든 레시피가
남의 인생에 보너스로 꽂히는 일'이라고.
그게 뭐 어때서.
맛있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