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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27. 2024

B24. 인간적이고 평범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삶

  - 윌리엄 사로얀, 《인간희극》

B24. 인간적이고 평범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삶 / 《인간희극》 - 윌리엄 사로얀 지음, 안정효 옮김, 문예출판사

   ‘인간희극’이라고 하면 대개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희극》을 떠올리기 십상일 것입니다. 옮긴이(안정효)는 책 맨 뒤의 ‘작품 해설’에서 발자크의 것은 ‘인간극장’이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친절하게 지적해 줍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소설가 윌리엄 사로얀(구글 표기로는 ‘서로이언’)이고, 또 하나는 번역가 안정효입니다.

   먼저, 아르메니아계의 미국인인 윌리엄 사로얀은 저한테, 영화로 치면 미국의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나 우리의 배창호 감독과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소설가입니다.

   그렇게 인간적이고 평범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문체로, 똑같이 인간적이고 평범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삶을 그려내는 소설가를 저는 달리 알지 못합니다.

   제가 사로얀을 다른 어떤 작가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애정으로 아끼는 까닭입니다.

   최근에 이미리내 소설가가 영어로 쓴 장편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8 Lives of a Century-old Trickster)》이 미국에서 주관하는 ‘윌리엄 사로얀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요.

   다음으로, 안정효는 물론 그 스스로가 《하얀전쟁》이나 《은마는 오지 않는다》와 같은 작품들로 당당히 일가를 이룬 소설가이기도 합니다만, 저한테 그는 무엇보다도 노벨문학상 수장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편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유려하게 우리말로 옮겨낸 불세출의 번역가로 기억됩니다.

   필경 그의 번역으로 읽지 않았다면 마르케스의 진가를, 그리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진가를 저는 얼마간 오해하거나 절하시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번역으로 사로얀을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동시에 훌륭한 작업일 수 있는가를 저는 안정효를 통하여 처음 인식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에 견줄 만한 사례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을 이윤기의 번역으로 읽었던 경우 정도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발자크의 그것처럼 제목에 ‘희극’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설마 이 소설을 그야말로 ‘희극’으로 받아들일 독자분은 안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희극은 언제나 그 이면에 비극을 품고 있습니다. 비극을 품고 있지 않은 희극은 그저 뜻 없이 소비되는 한갓 개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로얀의 희극이 품고 있는 비극은 ‘따뜻한’ 슬픔의 정조로 가득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시나브로 추워져 가는 이 늦가을이라는 계절에,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로 ‘독서의 계절’에 참 잘 어울리는, 어쩌면 꼭 맞는 소설이라고까지 소개하고픈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 속에서 제 마음에 쏙 들어온 문장들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언젠가 넌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넌 죽지 않도록 해야 해.

   ‘그녀는 아들에게 두 눈이, 그리고 그 눈 뒤에는 관찰력이, 관찰력 뒤에는 알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과 갈망이 있음을 알았다.

   ‘바로잡기가 불가능한 무엇을 바로잡기 시작하려는 각오……

   ‘그는 가엾은 이 여자 한 사람뿐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고하고 죽어가는 모든 끔찍한 일과 양상 들에 대해서 벅찬 연민을 느꼈다.

   ‘네가 느끼는 외로움은 네가 더는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란다. 그리고 이 세상은 항상 그런 고독으로 가득하단다.

   ‘세상에는 온통 겁에 질린 아이들투성이야. 겁이 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겁을 준단다. 이해를 하도록 노력해야지.

   ‘네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렴.

   ‘난 네가 한마디 말도 못하게끔 네 마음이 막을 때가 가끔 있으리라는 걸 알아.

   ‘돌아오면 항상 기쁘니까 그렇지, 왜긴 왜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이란다.

   ‘나는 내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라.

   ‘천성적으로 서로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존중할 줄 알게 된다면 저마다 참된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

   ‘이곳은 미국이고, 이 나라에서는 이곳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만이 외국인이지.

   ‘나 자신이 부패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믿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썩어빠지지 않은 인간을 한 명이라도 찾아내자.

   ‘정직하고 마음이 넓고 성격이 온순한 보기 드문 아이……

   ‘그는 무엇이라도 낭비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나이를 먹어야만 사물을 터득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남자는 어른이 되면 울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연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참된 인간이 아니지. 만일 세상의 고통을 보고도 울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반만 인간이야.

   ‘그는 항상 나무를 심는다는 생각을 사랑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제 정신을 잃어도 좋다는 이유는 되지 못해.

   ‘내가 치르는 싸움은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의 내면에서 내가 먼저 파괴하기를 원하는 그런 달갑지 못한 인간의 요소하고의 싸움이야.

   ‘훌륭한 인간은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는 걸 기억하도록 해라.

   ‘한 인간의 인간성은 사라지지만, 그의 가장 훌륭한 본질은 남아 있지. 그것은 영원히 남아 있단다.

   ‘고통이 완전해지면 그것은 죽음 그 자체가 되고, 그러면 그것은 너한테서 떠나간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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