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민여승대제 / 《논어》 〈안연편〉 제2장
經(경)7. 사람으로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 使民如承大祭(사민여승대제) /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제2장
‘使民如承大祭(사민여승대제)’는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 제2장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보통, ‘백성에게 일을 시키려면 큰 제사를 지낼 때처럼 매우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라’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공자님 말씀이지요.
끊어 읽기는 ‘사민/여승/대제’쯤으로 하면 되겠고, 저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큰 제사를 지내듯 백성을 부려라.’
딱히 어려운 글자는 없지만, 맨 앞의 ‘하여금 사(使)’자를 ‘일을 시키다’라는 뜻의 동사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만 주의하면 되겠습니다. 저는 ‘부리다’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받들다’ 또는 ‘잇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경우가 많은 ‘承(승)’자는 바로 뒤의 ‘큰 제사’라는 목적어를 고려하여 ‘지내다’라고 번역했고요. 이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라고 해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하면, 이 문장, 공자님의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문 문장을 번역할 때 흔히 부딪히게 되는 문제지만, 이 문장도 ‘사민여승대제’라는 여섯 글자를 그대로 번역해 놓는 것만으로는 그 본뜻 또는 속뜻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의 본디 의미를 파악하려면 큰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이지요. 한데, 이 여섯 글자 가운데는 그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가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글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위의 풀이에서 ‘공경하는 마음’이란 독자가 미루어 헤아려야 하는, 곧 해석해야 하는 영역에 속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경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넣어서 번역하는 것은 직역이 아니라 의역인 셈입니다.
제가 한문을 공부하면서 늘 곤혹스러웠던 것은 바로 이렇듯 한문은 해석과 번역 사이의 틈이 작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번역이 곧 해석이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 한문이요, 한문의 주요한 한 특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제가 ‘백성을 부리다’라고 번역한 ‘백성에게 일을 시키다’라는 뜻의 말(使民)은 공자와 그의 수제자인 안연이 활동하던 시대상,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춘추시대를 감안하면, 아마도 나라 또는 관(官)에서 백성을 부역에 강제로 동원하던 일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또, ‘큰 제사(大祭)’는 사전에서 그 뜻풀이를 찾아보면 ‘나라에서 성대하게 지내는 제사’라는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구체적으로는 조선시대에 종묘(宗廟)나 사직(社稷), 또는 영녕전(永寧殿)에서 지내던 큰 제사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영녕전(永寧殿)’은 종묘의 정전(正殿)에 모실 수 없는 임금이나 왕비의 신위(神位)를 봉안하던 곳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큰 규모의 공적(公的)인 제사라는 뜻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일반의 사삿집(私家)에서 지내는 제사보다 공적 영역에서 국가 차원의 큰 제사를 지낼 때 사람은 공경하고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이 아무래도 훨씬 더 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작은 제사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큰 제사를 지낼 때처럼 매우 공경하고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백성에게 일을 시키라는 의미의 문장이 바로 ‘사민여승대제’인 것입니다.
지금은, 군인이나 공무원이 아니라면,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平時)에 국가나 관에서 국민 또는 시민을 함부로 동원하여 일을 시킬 수 없는 시대입니다. 물론 전체주의 국가에서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요.
따라서 이 문장을 오늘의 시대에 적용한다면, 아마도 일반적인 직장에서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채용하여 부릴 때, 곧 일을 시킬 때를 떠올려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경우 대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피고용인에 대한 고용인의 갑질 아니겠습니까. 무리한 일을 시키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함부로 떠넘기거나, 또는 일을 시킬 때 안하무인의 무례한 태도와 사나운 막말로 피고용인의 사기와 자존감을 여지없이 떨어뜨리거나…….
‘사민여승대제’는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경고의 문장, 또는 교훈이나 지침을 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범위를 더 넓히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여승대제’, 곧 큰 제사를 지낼 때처럼 삼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다하여 존중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 아닐는지요.
물론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자 전제는 마땅히 ‘상호존중(相互尊重)’이겠지만요.
성경에도 비슷한 취지의 말씀이 보입니다. 신약도 아닌 구약의 레위기 25장 후반부에 무려 세 차례나 거듭해서 나오지요. 모두 금지의 의미로, 부정 표현이자 명령형인 점이 특징적입니다. 그만큼 무겁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43절)”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46절).”
“주인은 그를 ……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53절).”
여기서 엄하게 부리지 말라는 것은 가혹하고 무도하게 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사민여승대제’, 참 아름다운 문장, 힘이 되는 참 따뜻한 말씀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