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시인의 길 위에서

by 김준완


시인은 붓을 내려놓는다
원고지 위
번진 잉크가
작은 달팽이 한 마리를 빚어낸다

꾹 눌러 찍은 마지막 마침표 위에서
달팽이는 고개를 든다
문장의 가장자리 너머
몸을 밀어 올려
책상을 지나 시인의 손등에 닿는다

은빛 자국이 남는다

달팽이는 잠시 멈추어
젖은 몸을 웅크리고
그 위에 한 줄을 새긴다

"당신이 나를 느리게 적어주었기에
나는 나를 놓치지 않았다"

달팽이는
시인의 손등 위를
천천히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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