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세계 일주를 꿈꿨던 사람일지라도 벨라루스를 거치는 생각을 해봤을까? 벨라루스는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 생소한 나라였다.
‘별수 있나…’ 잘 모르기 때문에 불안했지만, 당장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나는 대회 설명 자료와 북한 측에서 전달받은 협조 공문을 구단에 전달한 후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기다림에 초조해질 무렵 구단 관계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수단과 코치진 3명이 함께 가겠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준비하면 되죠?”
‘됐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 후 침착하게 대회 참가 절차에 관련해서 설명하고 혹여 내용을 잘못 이해했을까 한 번 더 의사를 확인했다. 이후에는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북한에 입국할 수 있다는 대회 주최 측의 공문을 받고 선수단의 항공권을 발권한 후 대회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장마다에서 백두의 훈련열풍을 더욱 세차게 일으키라!' 북한 4.25 체육단 보조구장
하지만 너무 낙관하고 있었던 것일까. 의외의 변수로 인해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북한 내부 문제로 인해 대회가 2주 남은 상황에서 한 달 정도 연기가 되었고, 벨라루스 구단에 일정 변경을 통보해야 했다. 이때만 해도 단순히 일정이 미루어지는 것이니 기다림이 길어져 짜증이 날지언정 충분히 협의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구단에 양해 공문을 보냈고 이에 대한 구단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에 우리 구단은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불참 통보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대회가 미루어졌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대체할 수 있는 구단을 찾을 수 없었고, 찾을 수 없게 되면 대회에 참가하는 팀의 수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대회에 차질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떻게든 구단을 설득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변경에 많이 당황하신 것은 이해하지만 북한뿐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서 안전을 보장하는 대회이니만큼 선수들과 스탭들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북한 측 공문도 받아보지 않았습니까?”
설명보다 구걸에 가까운 설명을 들은 벨라루스 구단 관계자는 짧은 답변을 보내왔다.
“이렇게 되어서 매우 유감입니다.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show must go on right?)”
거의 조롱에 가까운 답변을 받은 나는 그들의 무책임함과 무례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침착하게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다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끝낸 나는 다시 한번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결심한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돌릴 수 있을까. 딱히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상황은 알려야 하기에 주최 측에 상황 설명을 했고 주최 측도 예상대로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득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구단은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는 것을 보며 미성년자들을 보내야 하는 대회가 불안하다고 판단했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대회에 불참하는 것이라면…
사실 이 벨라루스 구단과 이전부터 함께 일을 해왔던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대면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도 아니기에 냉정한 판단을 해보면 나와 구단 사이조차도 신뢰가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물며 주최 지가 국제적으로 제일 핫(?)한 북한이라니. 어떻게 보면 이런 반응이 당연했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정리하다 보니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결심을 내린 나는 벨라루스 구단 관계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직접 한국에서 벨라루스로 이동한 뒤, 선수단과 함께 북한에 입국하겠습니다.”
김일성 경기장 내부 '인민상계관작품 대집단체조 <천리마 조선> (1963)'
-대한민국 서울에서 (2022)
*본 글의 북한말은 실제 워딩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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