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의 맛 07화

두들겨 패고 달달 볶는 맛

카레

by Becky

햇볕만 따뜻한 날이었다. 환기를 핑계 삼아 조금 열어둔 창으로 찬 바람이 들이쳤다. 엄마는 그날 거실에 앉아 작은 거울을 세워두고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새치를 핀셋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헛질로 검은 머리카락을 뽑는지 간간히 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괜히 엄마 주위를 얼쩡거리다가는 핀셋이 내 손에 쥐어질 것 같아 방 침대에 조용히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흰 고양이의 솜방망이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혼자 웃어대다가 SNS 페이지에 새로 업로드된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여념 없었다. 그런데 밖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들렸다. 엿들으려 한 건 아니다. 열어둔 창 사이로 들어오던 찬바람을 수다가 밀어대는 통에 집 안에 그 소리가 가득 찼을 뿐이다.


“저 집 아줌마는 너무 억척스럽지 않우? 어쩜 그렇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제 이득만 차리는지, 쯧쯧.”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았으니 그 젊은 나이에 이 동네에 집을 샀지. 자식 둘도 빚 없이 대학 보내고, 직장 잘 잡았지. 첫째는 결혼도 잘했잖아~ 그게 뭐 나쁜 일이라고.”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엄마의 핀셋이 멈췄다. 내 방에서 거실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핀셋 ‘또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추측하건대 엄마는 단번에 그 내용이 우리집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그렇다고 밖에서 이야기하는 게 누군지 애써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자신을 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할 법도 한데 다시 핀셋 ‘또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히려 창가를 기웃거린 건 나였다.


두 아주머니의 수다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듣는 아주머니가 욕하는 아주머니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삼사십 분이 지난 후 엄마는 옥상에 올라가 당근과 감자를 하나씩 꺼내왔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그 와중에 저녁 반찬이 궁금해) 거실을 배회하다 소파에 앉아 엄마의 행동을 주시했다. 엄마는 가장 큰 도마와 중국식 칼을 꺼내 닦은 후 씻어둔 당근과 감자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 섞어 말하면 두들겨 팼다고 해야 하나. (그날 저녁 카레를 먹던 아빠가 평소와 달리 건더기와 밥알의 크기가 같다며 조용히 나에게 무슨 일 있었는지 물었다. 물론 나는 그냥 먹으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뜨겁게 데운 냄비에 고기를 달달 볶고, 미리 썰어둔 채소를 넣고 다시 볶았다. 카레 가루 푼 물을 붓기 전까지 집 안에서는 아주 아주 고소한 냄새가 났다.


우리는 가끔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그게 친한 지인이든, 연예인이든, 방금 스쳐 지나간 사람이라도 말이다. 아주 먼 곳에서 온 이들에게, 우리와 한 소속이 아닌 이들에게는 더욱 심하다. 마치 자신은 도덕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말해대는 통에 혹 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될 당사자의 입장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무어라 핑계를 대거나 입장을 표명하기에도 어색하고 어리석은 짓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많아 좀 억울하다. 어쩌면 엄마는 억울하더라도 어리석은 꼴이 될까 걱정하여 그저 참았던 거라고, 더욱이 그 이야기를 내가 신경 쓰고 눈치 볼까 봐 우려했던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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