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의 맛 08화

잠깐 쉬었다 갈까?

새콤 달큼한 토마토 마리네이드

by Becky

파도가 지나간 모래사장을 걷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본 적이 있다. 젖은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언제 이렇게 훌쩍 컸는지, 발자국이 무척 어른 같아 보였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사회를 알았고, 규칙을 배웠다. 초등학교에 졸업하고서는 중학교에 다녀야 했다. 초등학교와 달랐다. 처음 시험과 성적이라는 담을 맞닥뜨렸고, 적응하는 데에만 3년이 걸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선생님도, 부모님도, 심지어 친구들조차 “대학을 가야 한다”라고 떠들어댔다. 매달 기출문제집을 몇 권씩 풀어제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학교로 학원으로 뛰어다녔고,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시험의 빈도가 잦아졌고 시야는 좁아졌다.


대학에 갔더니 취업을 해야 한다며 학교 성적관리는 기본에 온갖 자격증을 따야 했다. 더군다나 생활비, 등록금 때문에 주말마다(시간이 허락한다면 평일에도) 아르바이트해야 했다. 정신없이 달렸다. 20대 초반의 주말은 전부 돈 버는 시간이었다. 주말에 일하지 않으면 쉰 만큼 다음 달 생활비가 모자랄 게 뻔했다. 아르바이트고 학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에는 ‘동굴’로 기어들어가 숨은 적도 있다. (동굴에서 기어 나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남들만큼 열심히 살았지만, 돌이켜보면 무척 힘들었다. 잠깐 멈춰 서서 숨 한번 고른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돈 조금 부족하다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닌데, 남들이 하는 거 전부 따라 하지 않는다고 천지가 개벽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어리광 부리고 때나 써도 되는 시기에 어쭙잖은 어른 흉내를 냈던 게 지금 와서야 조금 억울하다. 물론 이런 얘기도 어느 정도 밥벌이를 찾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낸 건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서랄까.


그래, 우리는 지금 잠깐 쉬었다 가는 게 좋다. 전환점, 숨 쉴 곳, 보호막이 되어줄 곳이 필요하다. 그곳이 숲이나 바다, 자연의 품이라면 더 좋다. 숲은 키가 큰 나무들을 앞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주고, 풀벌레 울음소리와 선선 한바람으로 지친 마음을 토닥여주고, 자작자작 밟히는 풀과 흙이라는 안락한 품을 내어준다. 바다에서는 수평선이 어지러운 머릿속을 고요히 잠재우고, 발밑에 치이는 얕은 파도는 ‘괜찮다’ 속삭여준다. 자연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품는다.


한 해의 반을 넘어섰고 여름 무더위가 한창이다. 숲이든 바다든 일단 짐을 꾸려 떠나자. 먹는 게 걱정이라면 토마토 마리네이드 한 통과 빵 몇 덩이만 챙기면 하루는 끄떡없다. 새콤 달큼한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고, 빵이나 밥에 곁들여 먹기 좋으니 가방을 가볍게 하기엔 제격이다. 짭조름하고 담백한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자연과 딱 맞아떨어지는 맛이다. ‘잠깐 쉬었다 가는 맛’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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