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루틴은 둘 다 반복적인 행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두 용어의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신경과학을 전공한 안느-로르 르 쿤프(Anne-Laure Le Cunff)는 습관과 루틴의 차이를 얼마나 의도적으로 인지하고 했는가로 설명하고 있다. 습관은 보통 특정 신호에 따른 자동화된 욕구이고 루틴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행동이며 지속하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나쁜 습관을 갖고 살았다. 시원한 캔맥주가 좋았다. 하루 긴장을 풀기 위해서는 맥주라도 한 캔 마셔야 했다. 혼자서도 마셨다. 노곤해져 잠이 들면 어김없이 2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깼다. 자는 둥 마는 둥 어지러운 밤이 지나고 아침부터 빈속에 커피를 마셨다. 머리가 무겁고 피곤했다.
하루도 긴장하지 않는 날이 없었으므로 맥주와 커피는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건강이 나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몸에 더 이상이 오기 전에 이 생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가뿐하게 일어날 수는 없을까?’
몸에 밴 습관을 바꾸는 건 어려웠다. 잠을 잘 자려면 커피를 줄여야 했지만, 손에는 늘 커피가 있었고, 매일 마시는 맥주가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긴장을 풀어주는 시원한 캔맥주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일상을 개선할 의지가 습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을 때 예감했던 병이 찾아왔다.
암이었다. 수술만으로 완치되지 않는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위기 앞에 굳건했던 습관들이 한순간 힘을 잃었다.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 온 습관들과 이별할 순간이었다. 컴퓨터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나쁜 습관을 삭제하고 좋은 습관을 복사, 붙여넣기 해서 건강한 삶으로 편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선 맥주를 끊고 커피도 멀리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찾아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을 적었다. 물 마시기, 기름지고 단 음식 피하기, 꾸준히 운동하기, 잠 잘 자기, 스트레스 멀리하기 등 평범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손가락 다섯 개를 접으며 실천 의지를 세웠다. 첫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신다. 둘째, 요리할 때 기름을 적게 사용하고 달콤한 간식을 먹지 않는다. 셋째, 한 시간 이상 운동하기를 일과 중 가장 우선으로 한다. 넷째, 일찍 잠자리에 든다. 다섯째,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멀리한다.
손가락을 의식하며 생활하니 좋지 않은 습관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루틴이 자리 잡는 것 같았다. 운동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자니 조금씩 몸이 가벼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뿐한 아침을 기대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루틴의 중심에 운동이 있었다. 운동하면 생각이 단순해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든다. 간식 대신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숙면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 한 시간 이상 운동하기’를 루틴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듯 운동하기 전에 의지가 생길 수 있는 매개가 있으면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러나 운동하겠다는 의지는 이런저런 이유 앞에 좌절되기 아주 쉽기 때문에 매일 운동하도록 의지를 지속시킬 신호를 찾는 것. 그것이 운동 루틴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숙제였다.
일 년 이상 꾸준히 해보니 운동을 하게 하는 신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해진다는 느낌’이었다. 몸무게가 줄거나 근육이 생기는 변화가 더 강력한 신호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쉽게 흔들린다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운동할 때 느껴지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이 조금씩 ‘건강해진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이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면 몸이 무겁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 운동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이 새로운 에너지와 긍정적인 느낌은 운동할 때 분비되는 베타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덕분이다. 운동으로 얻는 신체의 변화가 다시 운동하게 하는 선순환을 가져온 것이다.
배우 하정우는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써서 ‘걷기’에 대한 생각을 전한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몸을 풀고 하루 3만 보를 가뿐하게 걷는다. 서울에서 해남까지 동료들과 함께 577km를 걸은 ‘국토대장정’에도 도전했다. 대장정의 끝에서 그가 만난 건 대단한 성취감이 아닌 ‘길 위에서 만나는 순간과 기억들’에 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운동이 루틴을 넘어 자연스러운 삶이 되길 바란다. 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지 않고도 걷고 산에 오르고, 수영하거나 요가를 하는 일상을 살고 싶다. 아직은 자주 마음이 느슨해져 되돌아가기가 자동실행될 때도 있지만 다시 의지를 갖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더욱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고 골치아픈 그 녀석과도 이별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 기다리던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