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할 때는 알지 못했다. 소리없이 병이 찾아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피곤하고 힘든 거로는 병이 되지 않을 거라고.
그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6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일을 쉰 만큼 부족한 부분을 더 열심히 해서 만회하고 싶었다. 일이 많아졌다. 야근에 집안일로 힘들어도 남들도 다 이렇게 살고 있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잠을 줄여서라도 할 일을 마무리했다.
복직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첫째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둘째는 중학교 2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세 아이를 챙기며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는 일이 잘 되었고 동료들과 연구한 내용으로 외부 강의를 할 기회도 생겼다. 바쁘고 힘겨웠지만 계획대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즈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발병. 사형 선고 같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눈물이 흘렀다. 지금껏 삶을 지탱해온 것이 무엇이었나 망연했다. 고요한 세상 속에 혼자 남은 것 같았다. 치료를 위해 병휴직을 했다. 일상은 멈추었고 낯선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 환자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나를 병들게 한 원인을 찾아 과거를 헤매거나 오지 않는 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더딘 시간을 견뎌야 했다. 힘을 내려고 한 걸음 더 걸어보지만 걷고 걸어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을 땐 얼마를 더 걸어야 몸이 회복되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세상엔 많은 암 환자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병이 오고야 보이는 것들. 나도 암환자가 될 수 있었다. 운이 없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암이 생길 수 있는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피곤하고 힘들 땐 쉬어야 했다. 잠을 줄이지 말고 일을 줄여야 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몰랐다. 건강한 생활습관이 필요했다. 물을 자주 마시고 운동을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렵게 깨달았다. 병을 얻고서야 몸을 돌보는 데 집중하게 되었다. 이제야 하루 일과 중 운동과 명상을 우선 순위에 두며 몸과 마음을 살피는 삶을 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과거의 나처럼 병을 향해 가는 것이 보인다. 무리한 삶을 살면서 건강을 돌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좋지 않은 삶의 습관을 갖고 살면서 지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간다.
핑크리본은 유방암 조기 진단과 예방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암을 극복하여 아름다운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자는 표식이다. 미국 뉴욕에서 유방암 생존자들을 위한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리본을 나눠 준 것이 그 시작이 되었다.
나도 암을 완치하기 위해 핑크리본을 달고 달린다. 원래 습관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핑크리본은 내 삶을 지켜줄 것이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암 진단은 삶을 멈추게 했지만 멈추어 돌아보게 하고 더 건강한 삶으로 이끌었다. 나의 암투병은 나를 지키고 나를 지켜보는 이웃의 건강도 지키는 핑크리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