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둥구미 만들러 가요.”
아이들이 다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나를 초록별이라고 불렀다. 7살 반 아이들을 돕는 부모 활동을 하고 얻은 이름이다. 우리 어린이집 엄마들은 오전에 아이들을 보내고 마을에서 그림책 읽기, 기타 배우기 등 소모임을 했다. 그날은 둥구미 소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장난감이나 보자기, 수첩 등을 넣는 바구니를 부드러운 지끈으로 둥구미를 만들어 사용했다.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한 모양이 아이들 얼굴처럼 귀여워 물건을 넣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둥구미’라고 말할 때 들리는 억양과 귓가에 울리는 소곤소곤 발음도 듣기 좋았다. ‘나도 배워 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보기라도 한 듯 원장님이 부르셨다.
“같이 가요.”
“정말요? 한번 해볼까요?”
둥구미를 만든다는 기대에 마음이 살랑 들떴다. 그렇게 원장님을 따라 소모임에 갔다.
만드는 법은 동네 어르신들이 가르쳐 주셨다. 오래전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던 분들이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대부분 농사를 그만두고 노인정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어르신들은 이야기하면서도 손을 쉬지 않았다. 금세 뚝딱 둥그런 둥구미가 완성됐다.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봐요.”
자연색과 진분홍색 지끈을 골랐다. 나보다 먼저 만드는 법을 배운 동네 엄마가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옷감의 씨실과 날실처럼 둥구미도 뼈대가 되는 날실과 씨실을 준비했다. 자연색을 적당한 길이로 8개 잘라 반으로 접어 날실을 만들었다. 두 가닥씩 네 개로 손가마처럼 중심을 만들어두고 진분홍색 씨실을 길게 감아 두 줄을 교차하며 둥글게 엮어 바닥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돼요?”
“잘 하네요. 손이 엄청 꼼꼼해요.”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잘하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실을 촘촘하게 당기면 생각한 대로 모양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느슨하게 잡고 전체 모양을 봐가며 적당하게 당겨야 균형 있는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완성된 바닥면의 날실을 한번 걸어 모서리를 만들었다. 씨실을 계속 엮어 옆면을 만들다 적당한 높이가 되면 날실을 안으로 넣어 마무리했다. 첫 작품은 연필꽂이 크기로 만들었다. 어떤 색을 섞어 만들어도 하나하나 예쁘고 다 정감이 갔다. 완성된 둥구미를 보며 흐뭇했다.
손으로 만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손길이 담겨있어 좋다. 손끝이 야무진 사람은 야무진 대로, 느슨한 사람은 느슨한 대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닮은 물건을 만든다. 또 이리저리 매만지며 번잡했던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다. 작은 둥구미를 여러 개 만들어 아이들 방에 놓아주고 이웃에게 선물도 했다. 물건을 건넬 때마다 그 집에 가서 잘 쓰일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실에 두고 쓰는 것을 친정어머니가 보시더니 집에도 이런 바구니가 있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만드신 오래된 둥구미였다. 내가 만든 것보다 크기가 조금 더 크고 모양은 똑같은 둥구미였다. 손잡이로 쓸 수 있도록 끝을 두 겹으로 마무리한 것까지 똑같았다. 어머니가 열아홉 되던 해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50년도 더 된 물건이었다.
‘여기에 무엇을 담았을까?’
‘둥구미를 만들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궁금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손재주가 좋아 멍석, 망태기 같은 물건을 다 만들어 쓸 정도였다며 돌아가시기 전 병환으로 여러 해 집에만 계셨다는 얘기였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둥그런 둥구미에서 할아버지의 온기가 느껴졌다. 농사일이 뜸한 농한기에도 둥구미를 짜며 손을 쉬지 않으셨을 할아버지. 곡식을 담아 나르며 자식들 먹거리를 챙기셨을 할아버지가 아련하게 떠올랐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시집보내기 아까웠다는 큰 이모, 음식 솜씨가 좋은 작은 이모, 뭐든지 잘하는 어머니까지 모두 할아버지 솜씨를 닮은 딸들이었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오랫동안 그리워했을 어머니의 마음도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세 딸 중 특히 솜씨가 좋은 나의 어머니. 계절 따라 만들어주시는 음식이나 필요한 대로 떠주시던 뜨개 물건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손재주에 감탄했다. 딸인 나는 어머니처럼 솜씨가 좋진 않지만 손으로 만든 물건을 아주 좋아한다. 둥구미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둥구미를 선물해주셨다. 소중하게 간직하며 자주 들여다본다. 내가 할아버지 둥구미를 만난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어느 날 문득 나의 둥구미나 어머니의 뜨개 물건을 만나 잊고 지냈던 이야기를 마주하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