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회사까지 가는 유일한 광역버스의 잔여석을 확인하라는 시간이다. 딸도 옆에 앱을 켜 놓고 출근 준비를 하겠지만 엄마가 돼서 태평하게 있을 수는 없다. 여차 하면 데려다주려고 아침마다 스탠바이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13킬로미터, 출근 러시 타임에도 차로 30분이면 간다.
광역버스는 버스 타는 시간만 45분인데 도시 안쪽의 지하철역들을 일일이 거치고 대단지 아파트를 돌고 나서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으로 온다. 그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다지만, 시의 경계를 오가는광역버스는 입석 금지라 빈 좌석이 없으면 정거장을 그냥 지나간다.
보통은 서너 석이 빈 채로 정거장에 도착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이 시간의 버스를 못 타면 30분 후에 다음 버스가 오니 지각이다.
집에서 더 일찍 나가도 소용없다. 9시 출근인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전 버스, 전전 버스, 전전전....도 마찬가지다. 회사까지 가는 유일한 빨간 버스를 안심하고 타려면 10시 출근이라고 해도 7시에는 버스정거장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에잇, 우리 소중한 막내딸을 위해 회사 옆으로 이사를 가 버릴까!라고 호기롭게 외쳤으나 네이버 부동산을 보고 조용히 포기했다. 그 동네는 우리 집의 세 배쯤 되는 가격이었다.
하긴, 거기로 이사 가면 아직 강북으로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통근거리가 더 멀어져서 안 되겠다,는 매우 근거 있는 사유로 위안을 받았다. (집값 부분은 접고)
사실 작은딸의 독립은 예정된 일이었다. 이미 대학생 때부터 집이 아닌 학교 기숙사에서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하던 2020년 첫 학기를 제외한) 3년 반학기를 다녔다.
우리 집에서 딸의 학교까지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보를 포함하면 편도 1시간 반은 걸린다. 대학교는 그 안에서도 이동 거리가 넓으니까 실제 강의동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이 거리가 통학을 못 할 만큼 멀었냐는 데는 사람마다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한다.
어쨌거나 이 정도 물리적 거리에서는 기숙사에 들어가기 어렵다는데 입학 때부터 운 좋게 기숙사에 된 후 마지막 학기까지 머물 수 있었다. 부모로서도 딸이 안전한 학교 기숙사에 사는 게 여러모로 편하고 좋았다.
학생 때는 그나마 일 년에 두 번의 방학 동안 집에 와 있었지만 취업 후에는 방학이랄 게 없으니, 그동안에 반만 나가 살았다면 이제는 아예 나가 살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먼저 직장인이 된 언니도 회사 근처에 살고 있고, 작은애도 취업하면 언니처럼 회사 근처에 살 거라고 다짐한 터였다.
몇 년 전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에서 경기도 내에서도 멀고 먼 부모님 집에서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30대 삼 남매가 나왔다. 내가 드라마를 매회 챙겨 본 게 아니어서 그럴만한 사연이 전제돼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가끔 보면서 '저 나이 직장인들이 왜 굳이 저 고생을?'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 드라마는 그런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극적인 플롯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그래, 출퇴근 길에 버리는 시간과 수고를 돈과 바꾸는 것도 가치가 있다. 내가 내는 돈도 아니고 너 편한 대로 살아라.
작은애의 주변 선배들은 자취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주는 모양이었다. 여태 낸 월세가 제일 아깝다고 조언한 선배도 있고, 월세를 내더라도 직주 근접으로 몸이 편한 게 제일이라는 선배도 있다. 몸이 편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돈을 버는 성인으로서 '나 혼자 살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바람도 작용했을 것이다.
만약 집과 회사 간의 대중교통이 편리하게 잘 연결되었다면 독립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내 선배의 딸은, 너무 먼 곳에서 혼자 살기는 그렇다며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독립하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 엄마, 나도 이제 서른이 다 돼 가는데 따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어쩌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다.
머리 큰 자식은 집을 떠나고 싶어 하고 부모는 떠나보내는 것이 서운해도 할 수 없다.
작은애가 일곱 살 때 쓴 편지. 20006년이라고...
나도 지금은 노견을 데리고 남편과 둘이 사는 일에 익숙해졌지만 한때 빈 둥지 증후군이라 할 만한 위기를 겪었다.
처음 두 딸이 모두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에 간 후였다.몇 달 동안 마음이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이들 방 문을 닫아두는 것도 어쩐지 편치 않아서 늘 열어두었고 가구와 물건들도 그대로 두었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바쁠 때는 모르겠는데 조용한 시간이 문제였다. 우리 애들은 왜 이렇게 빨리 집을 나가고 싶어 하지, 내가 그렇게 같이 살기 힘든 엄마인가 자책도 했다. 부모자식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던 집의 아이들도 다 같이 사는데 우리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싶었다.
자녀를 성공적으로 독립시키는 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 아이들이 그만큼 자립적이고 능력이 있다는 반증이라고 위안을 하면서도 자꾸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 한동안 힘들었다.
다행히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사이즈의 우울감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주말마다 집에 와서 시끌벅적하면서 허전한 마음이 아물었다. 애들이 맛있는 것을 사 들고 와서 놀다가 자고 가는 하룻밤은 처방약이 돼 주었다. 애들이 갈 때는 개를 데리고 배웅하거나 때로 내가 데려다주고 왔다.
자식 뒤치다꺼리를 않고 사니 내 몸이 편했고 내 시간이 많았다.
성인 자녀와의 적당한 거리가 긍정적인 비무장지대 역할을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최근에 작은애가 집에서 같이 산 것이 한 달 남짓 된다. 갱년기 엄마와 20대 미혼 자녀로서 서로가 딱 즐겁고 좋았던 기간이다.
한 사람이 집에 있으면 그만큼 돈도 더 들고 성가시다. 옛날에 우리 엄마가 혀를 차며 내게 말했듯이, 아침에 나가기 바빠 뱀허물 같이 벗어 놓은 것들을 치우는 잔일도 추가된다.
성인이 된 딸들을 챙기는 일은 가끔 하면 참 좋은데 매일 하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빈 둥지를 돌아보는 나약한 엄마 새가 아니라고!
나는 작은애가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보안도 좋고 가전제품이 완비돼 있는 오피스텔 월세로 해서 최대한 빠른 입주물을 찾는다는 미션을 세웠다.
회사에 도보 10분 이내로 다닐 수 있는 적당한 집을 찾아 사흘 연속 그 도시로 출장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