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주거지 후보는 오피스텔 A와 B였다. 작은애의 회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두 오피스텔은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고 연식도 비슷한 10년 차 준신축이다.
반면에 외관과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는데 A는어디 리조트를 연상케 하는 건물 디자인의 10층 높이세 개동이고 단지 주변과 골목 사이사이에 음식점과 카페가 밀집돼 있다.
B는 멋진 35층 고층 건물로 3층까지가 상가여서 각종 병원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 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업종이 들어와 있었다.
밖에서 보는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지만 내부구조와 월세 조건은 비슷했다. 나처럼 외지인이 봐도 A, B는 그 동네 직장인들의 자취 세계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선택이 쉽지 않았다. 부동산 어플에서 거주 후기를 찾아볼수록 '아는 게 병'이라고 오히려 결정장애가 커졌다.
-옆집에 누가 놀러 왔는지 다 알게 돼요. 층간뿐 아니라 벽간소음의 끝을 체감하는 집.
-이웃과 음식 냄새를 공유해요.
이것은 공통적인 단점이었다. 아마도 8평 남짓한 공간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작은 오피스텔은 이웃 소음이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새벽에 삐이이하는 소리가 어디서 계속 들리는 거죠? 너무 거슬려요.
-위엣분, 그게 감압밸브 소립니다. 전체 교체가 답인데 해결이 너무 느려 답답합니다. 미칠 거 같아 저도 연장 않고 이사 나가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불만은 B에 흔한 고질병으로 보였다. A의 후기 검색어에는 없었지만 B의 거주 후기에서 몇 년 전부터 뜨거운 이슈였다.
-식당가 소음과 냄새가 장난 아닙니다. 고기 냄새 때문에 창문도 맘대로 못 열어놔요.
-여기는 밤늦게까지 너무 시끄러워요.
예상하던 대로 B의 가장 큰 문제는 외부 환경에서 왔다. B 주변은 지역 주민들및 타 도시 사람들에게도 카페 거리로 불리며 인기가 좋았다.
양손에 각자 다른 단점을 들고 이 중에 어느 리스크를 무릅쓸지 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틀 동안 A와 B에서 각각 세 집씩 봤다. 두 오피스텔만 합해도 2천 세대가 넘고 주변에 다른 오피스텔이 더 있다 보니 빈 집도 종종 있었다.
집 내부 컨디션은 비슷했다. 두 곳 다 한쪽 벽면 전체가 붙박이장으로 짜여서 수납공간이 충분했고 그래서 생활공간은 좁았다. 고층건물인 B는 창문이 이중새시로 튼튼했고 A에는 작지만 ㄷ자 주방이 방과 분리된 구조가 있어서 좋았다.
집을 보는 중에 알게 된 재밌고도 놀라운 점은 '남자가 거주하는 집이 대부분 더 깨끗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병역제도의 순기능이라고 하면 오버일까.)
나는 A에서 집을 정하기로 했다. A가 안고 있는 소음과 냄새는 상가 영업시간 중에 창문을 닫고 지낸다든지 하며 나름대로 줄일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집에서 언제 들릴지 모른다는 B만의 감압변 소리는 대책이 없을 듯했다.
B의 매물들이 20층 이상의 고층이란 점도 주저되었다.
중개사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고층 매물들을 보여줬는데 창 밖의 뷰는 가슴까지 환해지고 훌륭했지만 그 고층이란 사실이'집 나간 자식에 대한 걱정거리'를 추가해 줬다.
딸이 한 층에 스무 집씩 붙어있는 빌딩 23층에 혼자 살고 있으면 가끔 뉴스에 나오는 고층건물 화재 같은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내가 의외로 걱정을 사서 할 때도 있다.)
게다가 20층 이상에 가보느라고 이용한 두 개의 엘리베이터가 똑같이 둘 다 흔들려서 깜짝 놀랐는데, 중개사는 고층 건물의 고속 엘리베이터는 원래 그렇다고 했다. 가뜩이나 여기 살면 출퇴근 시간 엘리베이터가 엄청 스트레스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엘리베이터의 진동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실은 B에 남은 미련을 똑 떨어뜨렸다.
B의 어느 고층 집 뷰
이틀 만에 A로 선택을 좁혔는데 새로운 대안이 등장했다. 나가 살 자식이 신입교육 중이라 바빠서 제 집 구하기에 동참을 못 하고 빠른 이사를 위해 엄마가 집을 알아보던 것인데, 작은애의 근황을 들은 회사 분들이 새로운 오피스텔 C를 추천하셨다는 것이다.
C는 그 동네를 조사할 때 준공 연식이 20년 차라 처음부터 제외했던 곳이다. A, B가 생기기 전까지 가장 인기 있던 주거지였고 현재는 A를 중심으로 남쪽에 B가, 북쪽에 C가 있었다.
현재는 A, B에 밀려 구축인 C는 월세와 인기가 조금은 낮아졌지만 오히려 근처 지하철역과는 더 가까운 위치에다 A, B 같이 전체 붙박이장이 없어서 공간은 좀 더 넓다고 했다.
황색 점멸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아까 언급한 A의 화려한 카페거리를 이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