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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Jun 14. 2021

['S] 죽음과의 격리

사는 게 쉽지가 않다. 근데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죽음과의 격리>


(1)

 ‘어디’일까가 생각보다 중요했다. 여러 지역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은 까다로웠는데, 결국에는 ‘이 곳만 아니면 돼’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끝까지 그렇게 착해야지. 좋은 사람이어야지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곳’이 아니어야 했던 이유는 아빠 때문이었다. 경찰관인 우리 아빠가 내 시체를 먼저 보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끝에 이르렀다. 언제든 나를 볼 수 있게 요구할 수 있을 우리 아빠는, 나의 죽음은 자살이 아닐 거라며 나를 어떻게든 보려고 할 것이다. 우리 딸인지 만져보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채택된 곳은 ‘한강’이었다. 내가 죽어야 할 곳은 결국 한강이야. 그래. 한강에 가는 거야. 로망의 산물이자, 죽음의 산물인 한강. 또, 강은 흐르니까 내가 그곳에서 죽었다고 해도 그곳에서 죽었다고 쉬이 말할 수 없을 거야. 아무도 내가 어디에서 죽었다고 말을 할 수 없는 거야. 그곳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던 나로 기록되는 거지.

 이제 시간만 정하면 된다. 사람이 없을 때. 한적하고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때. 설사 나를 본다 하더라도 스쳐갈 수 있는 때. 한강대교에서 뛰어내리려다가 구조되었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렸다. 나 같기도 해서. 그리고 실패했다는 것에서. 죽음에서만큼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한강에서는 일단 뛰어내리고 나면 죽지 않을 확률이 더 낮았다.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생각보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 그 차가움에 인간은 생각보다 곧 굳어 버리게 된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나자, 더는 망설일 것이 없었다.


(2)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유일한 쉼터 시흥 하늘휴게소에 들렀다. 마지막 만찬을 맞아본다. 몇 년을 불면증에 시달린 탓에 이 시간에 배고픈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죽고 싶은 와중에 이러한 식욕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드라마에서 고문당하다가도 잠자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가해자들의 대사가 생각난다. ‘이 와중에도 자냐?’

 “이 와중에도 저는 먹네요.”

 응급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내가 죽고 나면 저 사람들이 나를 찾는 걸까. 점점 소리가 가까워진다. 잉 저 아직 안 죽었는데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이 돈가스를 허겁지겁 먹다 말고 갑자기 뛰쳐나가다 문 앞에서 그들에게 가로막힌다.

“여깄었네.”

경찰이 씩 웃는다. 다른 대원이 그를 제압시키고, 그는 벌떡벌떡 뛴다.

“야! 미치겠어. 거기서 죽는 것도 아니고, 그 좁은 곳에서 나 더 이상 거기서 못 있겠다고!!”

경찰이 계속 소리치는 그를 끌고 나간다.

“여러분! 도망친 코로나19 확진자가 이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여러분은 이 곳에서 현장 PCR 검사 후, 바로 격리조치될 예정입니다. 확실한 격리를 위해 저희 방역당국 쪽에서 함께 동행하거나 집에 데려다 드릴 예정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세상은 내 편이 아니구나. 화가 나 울음이 났다. 마지막까지 내 선택은 하나도 없었다.

“저 시발 그냥 죽을 건데, 제발 저 그냥 나가게 해 주세요. 저 바로 죽을 거예요. 확진될 일 없어요. 저 그냥 나가게 해 주세요. 제발. 그냥 제발 내 맘대로 하게 좀 냅두라고요!!!”

달려 나가는데, 사람들이 나를 제압한다. 몇십 분을 계속 소리치고 울고 발버둥 쳤다.


(3)

 지쳐 쓰러진 건지, 그들이 나를 제압해버린 건지, 내가 깼을 때는 낯선 차 안이었다.

“집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주소 좀 불러주세요.”

“저.. 격리 안되어도 됩니다. 저 바로 죽을 거예요. 저 바로..”

“무조건 격리가 원칙입니다. 일단 2주 동안 살아보고 결정하세요. 무조건 2주 사셔야 합니다. 이건 저희 사이에 원칙입니다.”

그는 그 말과 함께 휴게소에서 내가 시키고 못 먹은 음식을 포장해온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나는 7평 남짓한 그 공간에서 다시 삶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2주의 나는 죽음을 선택할까, 삶을 선택할까. 일단 오늘은 나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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