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를 뒤집어쓰고도
뒷산 지나치게 초록이고
꽃과 열매 피어나는 소리
박새 울음처럼 쏟아지면
나만 죽어가는 것 같아요
불볕의 이별 통과할 자신은 없고
날짜를 뒷걸음질칠 수도 없을 때
주저앉아 신열을 앓는 시간
모두 죽어있고
우리만 오롯이 살아있던 그 겨울로
돌아가고 싶어요
언 손이 언 손을 잡던 계절
그 저릿한 손끝에 매달았던
흰 약속들은 뚝뚝 끊어졌지만
시작과 끝이 서로의 뒷덜미를 물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건 늘 시작이었어요
여름이 오기 전에 우리의 겨울로
도망치고 싶어요
끝나버리기 전에
아직 끝은 아니었던 때로
달아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