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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쏨땀쏨땀 애슐리 Aug 16. 2021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 안 부럽다

강남역 비어할레와 엄마

강남역 6번 출구 앞엔 뉴욕제과가, 7번 출구 쪽엔 씨티극장이 있던 시절이다. 신분당선의 개통으로 지금은 11번 출구가 돼 버린 7번 출구 바로 앞 시계탑 빌딩 지하에 내 첫사랑 맥줏집이 있었다. 짜릿한 신세계가 펼쳐진 그곳에 처음 간 날, 난 '앞으로도 쭉 술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 곳은 OB맥주 직영점, '비어할레'다.


그곳을 나에게 알려준 이는 엄마였다. 내가 갓 스무 살이 되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게 됐을 무렵, 엄마는 한껏 상기된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비어할레 얘기를 들려줬다. "바깥에선 지하에 그런 공간이 있는지 상상도 못 해. 계단을 내려가 보면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서 독일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 들더라니까?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건배하는 모습이 TV에서 본 독일 맥주축제 같더라고."


엄마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 나는 그 말을 듣기 몇 달 전부터 근처 어학원을 다니느라 일주일에 5번은 그 앞을 지나다녔는데도 그곳의 진가를 알아채지 못했었다. 간판도 크게 걸려있고 규모도 상당한 곳이었지만, 나에겐 일종의 스피크 이지 바(Speakeasy bar, 미국 금주령 시대의 주류 밀매점.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비밀스러운 술집) 같은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공간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커서, 비어할레가 골목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을 땐 혹시 건물주가 월세를 올린 건가 괜히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서울 곳곳에 있던 비어할레는 이제 을지로와 종로 일대에서만 일부 명맥을 잇고 있는데, 맛이야 큰 차이가 없지만 왠지 추억의 강남역 같지 않아 쉬이 찾아가진 않게 됐다.




비어할레를 가보기 전까진 학교 후문 허름한 노포에서 재탕 삼탕한 김치찌개에 소주를 들이켜거나, 만 이천 원에 안주 3개를 주는 '해리피아' 같은 저렴한 호프집에서나 술을 마시곤 했다. 치기 어린 스무 살, 이제는 나도 어른이랍시고 술맛도 모르고 그저 내장 안으로 술을 들이붓기만 했던 시행착오의 기간이었달까.


이곳에서 나는 제대로 된 맥주, 독일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안주를 처음 먹어봤다. 맥주가 신선하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 후론 학교 앞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는 왠지 김 빠진 느낌이 들어 성에 안찼다. '사라다'와 '샐러드'가 다른 것처럼, '쏘세지'와 '소시지'가 다르단 것도 나는 아마 거기서 처음 경험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 파는 소시지는 한 입 깨물면 두께감 있는 케이싱이 '와칵' 하고 터졌다. 얇게 썰어내는 훈제족발도 별미였는데, 여기에 부추김치나 백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안주가 끝도 없이 들어갔다.

아쉽게도 비어할레의 사진은 내 머릿속에만 있다. 작년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의 사진.

술맛을 아무리 좋아한대도 몸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주량이 센 편인데, 그 유전자를 엄마가 물려줬다. 아기 같은 간을 가졌던 20대 초반의 나와 그때만 해도 아직 40대였던 엄마. 우리  둘이 비어할레에 가면 500cc짜리 맥주를 열 개는 족히 해치우곤 했다. 나는 막 영글던 청춘, 엄마도 아직까지는 청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였다. 십몇 년이 흐르고 엄마는 메인 주종을 막걸리로, 나는 와인으로 바꿨지만 우리는 아직도 서로 대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술친구 중 하나다.




작년 초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을 갈 때 루프트한자를 탔다.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두 곳 중 하나를 경유하는데, 처음에는 환갑이 넘은 엄마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한국에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스케줄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러다 뮌헨에서 예닐곱 시간 경유할 수 있는 비행편이 있기에 혹시나 해서 엄마의 의견을 구하니 "독일까지 갔는데, 독일 맥주는 마셔보고 와야지. 그것도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는 뮌헨인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비어할레를 얘기해주던 젊은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피렌체에서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고 뮌헨 공항에 8시도 안 된 시간에 떨어졌는데, '누가 이 아침부터 맥주를 마실까? 맥줏집이 열기나 할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아침 9시 30분부터 열었고, 넓은 공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득 채워졌다. 생맥주는 500cc로 마셔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와 나지만, 맥주축제 영상에서 거대한 잔으로 '짠' 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 1리터짜리 큰 잔을 시켜 건배도 해 봤다. 아침부터 전통의상을 입은 브라스밴드가 나팔을 불었고, 음악의 흥겨움이 술맛을 돋워 한 잔, 또 한 잔을 불러왔다.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와 시내 풍경.


독일 현지에서 마신 맥주가 맛있었던 건 '말해 뭐해'다. 흰색 소시지 바이스부어스트(Weißwurst)나 새콤하니 입맛을 돋우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도 별미였다. 하지만 내 기준엔 스무 살 비어할레에서 받았던 미각적 충격에는 뒤지는 맛이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이곳저곳 다니며 오만 것 다 먹어본 나이 든 딸은 미각적 경험을 포함한 인생의 여러 부분에 있어서 심드렁해진 상태였다. 사람 입이란 게 간사해서 아무리 좋은 것을 넣어줘도 마음가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객관적 수준과는 차이가 지는 법이다. 기대가 적었으면 만족감이 더 컸을까? 옥토버페스트에 가보는 게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를 방문해보니 '괜찮네, 이 정도면 됐다, 복잡할 때 굳이 안 와도 되겠네'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딸을 잘 둬 좋은 구경 하고 맛난 것 먹는다며 기뻐했다. 친구들은 늙은 사람들끼리 고리타분한 패키지여행이나 가는데, 딸이랑 자유 여행을 하니까 젊은이들만 가는 곳도 가보고, 젊을 때 못 해본 배낭여행을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안락한 관광버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몸이 피로하지만, 그 고생마저 추억이라며 한 손엔 캐리어를 끌고 등에는 배낭을 멘 모습을 찍어달라던 엄마.


엄마와 여행을 갈 때마다 '그렇게 틱틱대지 말 걸' 후회하곤 한다. 왜 자꾸 엄마가 60대에 접어들었단 걸 망각하는지, 해외 경험이 적다면 낯선 게 당연한 일들을 왜 엄마가 내 도움 없이도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직장 상사나 내가 알아 모셔야 할 사람에게는 숨겼을 짜증을 고스란히 드러냈는지...


감정표현이 서툰 딸은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술기운을 빌어 말해야겠다.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보다 엄마가 데리고 간 강남역 비어할레의 맥주가 훨씬 맛있었다고, 지난해 로마에서 함께 맛본 정통 까르보나라보다 열 살 무렵 TGIF에 가자고 졸라 시켜먹은 토마토 스파게티의 맛이 훨씬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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