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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라는 작은 배 위에서

by 끼리

나에게 떠오른 불안은 넓은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 한 배 같은 존재였다


매일 잔잔하게 일렁이다가 큰 파도가 치는 날이면 아침, 저녁으로 사정없이 흔들렸다가 멈췄다를 반복했다


그 불안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죽는 건 너무 두렵다'라는 언젠가의 막연한 파도에 부딪히기도,

일을 하다가 현관문을 제대로 닫았었나 하는 집에 가야만 알 수 있는 파도에 부딪히기도 한다.


어떤 날은 파도가 배를 삼키키 바로 직전에 알아채기가 일쑤였고, 불안이 다가온 건지 모르고 정통으로 맞은 시기도 있었다. 그럴 땐 아예 배가 뒤집혀버려서 수영도 못하는 나는 구명조끼에 겨우 의지해 한참을 물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배 위에 올라탄다.


당연히 이런저런 파도에 너무 많이 휩쓸리다 보니 정신을 못 차렸다. 그 당시에는 탓을 많이 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그렇게만 안 했어도 내가 이렇게 안 됐을 건데'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고, 내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내 불안은 물 위라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태생이 그런 모양이다


불현듯 잔잔한 물결을 만나야 물 위에 있다는 걸 모르거나, 아주 가끔 보게 되는 뜻밖의 무지개를 보는 일이 있거나, 나처럼 방황하는 배를 바다 위에서 만나 서로 위안받을 때뿐이다. 사실 이런 일도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 난 이 불안을 타고 바다 위에서 어떻게 보내야 할까

몸을 맡기기로 한다. 이 파도에.

두려움에 떨면 배도 같이 흔들리고 또 파도가 친다


몸에 힘을 쭉 빼고 누워서 햇빛도 쬐고, 흘러가는 구름도 구경하고 말이다. 그러면 된다. 뜻밖의 마주침들로 종종 웃기도 가끔 잊기도 하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파도에 따라 나의 불안이 출렁거리면 이렇게 넘어가 보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혼자 읊조리며

"오늘도 잔잔하게 지나가주세요. 가끔 까먹어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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