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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맘혜랑 Aug 30. 2024

비움과 채움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다

살던 집에서 이사를 가기로 헀다. 마치 오랜 시간 꽉 짜여 있던 삶의 틈을 비집고 나온 것처럼, 나는 이제 숨을 고르며 새로운 나의 일정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세상사를 잠시 뒤로하고, 이제는 발걸음을 살포시 멈추기로 했다. 사업하면서 생긴 빚과 불확실한 미래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나는 삶의 규모를 축소하고 미니멀리즘을 꿈꾸며 조용히 살아가고자 한다. 꼭 바닷가나 산속의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라도 좋다. 단지 내 두 다리가 쭉 뻗을 수 있고, 내 가슴이 편안해질 정도의 소박함만 있으면 된다.


젊은 부부가 집을 보러 와서 에어컨 설치 가능 여부와 벽지를 새로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들은 결국 집을 계약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돌아간 후 벽지와 창틀을 닦았다. 햇빛이 비쳐 눈부신 창틀을 보며, 그 창틀 사이에 얽혀 있던 지난 시간들이 마치 살풀이를 하듯 풀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조바심을 낸다고 일이 빨리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의 뜻을 믿고, 이제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나온 나의 시간을 되짚어 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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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세웠다. 3개월 안에 책을 집필하겠다고. 이미 준비 작업을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산만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글쓰기에 몰입하려 한다. 신의 계시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 후반기를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 전반부를 마무리하며, 그동안의 성공과 실패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정리할 것이다. 이를 통해 내가 지나온 길이 누군가에게 등대가 되도록, 나 자신을 만들어 갈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성공이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성공과 실패들이 내 시간을 증명한다.


나는 자격증 수집가였다.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채웠다. 무엇을 시작할 때 두려움 없이 과감히 결단했고, 도전을 통해 삶의 경험치를 축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잠시 주춤거리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점차 책을 집필하겠다는 욕심으로 발전했다. 막연히 하루하루 글을 쓰는 것만도 벅찬 내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용암 같은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다. 무엇을 쓸지를 몰라 중구난방으로 글을 쓰던 때를 지나, 이제는 목차를 정하고 그 주제 안에서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발행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지나온 길이 앞으로의 길을 인도하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시기가 있다. 나는 그때가 지금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서서 담담히 어제를 본다. 나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살림꾼이 아니다. 어딘가 어수룩하고 부족한 나의 살림 실력은 지금까지의 나의 이력을 말해준다. 워킹맘으로 익숙한 업에서 잠시 벗어나, 집안일에 집중하고 글을 쓰며 지인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의 법칙은 자꾸만 몸과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구름 위를 떠돌게 만든다. 익숙함이 주는 폐해다. 이제 달릴 준비를 한 왕초보인 나, 필력이 뛰어난 작가들의 범접할 수 없는 역사를 바라보며, 필사와 독서를 통해 따라가고 있다.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작은 날들이 모여 이제 나는 어느덧 중년의 자리에 이르렀다. 오늘은 미국에 있는 큰 딸과 그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나의 심경 변화로 잠시 소홀했던 딸이,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나는 대단할 준비가 되어있어요!"라고 말하며 마케터로서의 포부를 전했다. 미국의 경제 환경 변화 속에서도 꿋꿋이 버틴 그녀의 시간이, 그녀의 노고와 함께 스며들었다. 그녀를 꼭 닮은 엄마인 나도 그녀의 카메라가 되기 위해 글을 만드는 나의 자세를 정립하고 있다. 딱 한 뼘씩만 자라나는 나의 글솜씨, 복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분수에 넘치는 마음으로 지금도 글을 쓰고 지우며 다시 쓴다. 소로우는 "가장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때로는 가장 적게 여행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나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현재와 미래를 채색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간의 경험이 형성한 생활 습관이, 앞으로의 나의 일상을 이루어갈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신이 이끄는 대로 주어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인생의 참된 의미는 나눌 때 비로소 찾아진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내 삶은 이미 신의 손길로 만들어졌고, 이제 나는 나눔을 실천하며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자리 잡으며 말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선 나는 비울 때 채워진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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