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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맘혜랑 Sep 06. 2024

가을, 그리고 나

인생의 변곡점에서

가을이 문을 두드린다. 여름은 끝이 없을 것만 같았고, 열대야 속에서 잠 못 이루던 밤들이 길게 이어졌었다. 그러나 어느새 발밑에 낙엽이 수북히 쌓이며,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바위에 앉아 나뭇잎을 세어본다. 바람이 산들거리며 내 피부를 스친다. 선선한 바람이 그토록 불편했던 여름의 기억을 지우듯,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때 내 곁에서 자그마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놀아달라 조르던 딸은 이제 서른 살이 되어 홀로 서 있다. 그리고 동네를 온통 뛰어다니며 에너지를 발산하던 아들은 이제 아빠가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나를 늘 묵묵히 지켜주던 막내는 여전히 내 옆에서 나의 불평과 불안을 감싸준다. 바위가 고마운 것처럼, 이 순간들이 참 소중하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세 아이를 낳아 키웠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는 것조차 어깨가 경직될 만큼 힘들었고, 조카의 기저귀 냄새조차 질겁하던 내가, 어느새 세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함께 성장했다. 엄마가 되어가며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매일같이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너도 아이 키워봐라, 그때는 내 맘을 알 거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 또한 자랐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실은 그들이 나에게 삶의 진리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들이 하나둘씩 내 품을 떠나고 있다. 언제나처럼 가는 계절과 함께 그들도 떠난다. 그들이 독립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니체의 말처럼,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이제 그들만의 길을 가고, 나도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어제는 집 앞 정원을 정리했다. 수북하게 자란 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니, 삶도 이처럼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살아왔던 나의 삶을 돌아보며, 이제는 나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되었다. 한 권의 책을 펼쳐 곱씹으며 읽듯, 나는 내 삶을 정리하며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려 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말했듯, "인생이란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집 강아지, 사랑이는 삶의 작은 기쁨이다. 삶은 달걀을 사료 위에 올려주면, 그는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매일 아침, 사랑이는 나를 산책으로 이끌며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그 짧은 산책 동안, 마음속에 쌓인 불만과 걱정들이 풀려나가고, 내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찾는다.


아이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교차하는 이 순간, 나는 그들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내 삶의 나침반을 다시 설정한다. 그들이 나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해 보며, 나도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성찰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스승이자 학생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며칠 전,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다녀왔다. 갑작스러운 병마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결혼식이었다.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을 보며, 그가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해본다. 기쁜 자리지만, 그를 향한 애틋함이 더 컸다. 하객들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한편으로는 자녀를 결혼시키는 부모의 마음과, 자신의 인생의 끝을 준비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더 이상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며,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도정을 준비한다. 영원하지 않을 나의 가을을, 영원하기를 바라는 나의 가을을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떨어진 낙엽을 가슴에 담는다. 낙엽이 떨어진다는 것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그 길에서 또 다른 나로 태어난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경험은 우리가 저지른 실수의 이름이다." 나의 실수와 성공은 결국 나를 완성시키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내 안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새로운 마라톤을 시작한다. 그들의 독립과 나의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이 순간, 나는 내 삶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가고자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그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한 편의 에세이가 한 권의 책이 되어가는 과정을 나는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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