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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Oct 12. 2020

엄마는 혼자 있고 싶다 - 들어가며

무기력감이 끝이 보이지 않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어느 날 그렇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두 달…. 이러다가 괜찮아지겠지, 언젠가는 끝나겠지 싶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거의 1년이 흘렀다.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이렇게 무기력한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눈을 뜨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정해서 처리하고, 배우고 싶은 것들도, 읽고 싶은 책도 한 둘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흑백사진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듯했다. 모든 게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평소에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이 어느 순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토록 감미롭던 음악이 마치 소음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음악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을 때,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시간이 생겨도 무얼 할지 모르겠고, 사람들 만나기도 겁이 났다. 심장이 뛰고 설렘을 느껴본 지가 언제였는지 생각해보니 까마득했다. 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얼 잘하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식욕도 점점 잃어갔다. 평소에 요리를 좋아하고, 여행을 가도 맛집을 위주로 동선을 짤 정도로 먹는 즐거움이 유달리 컸던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아무 감동이 없고, 밋밋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꽃피는 봄이 왔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갔을 때 예쁘게 핀 벚꽃을 보고는 서글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주책스럽게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런 내 모습에 나 조차도 당황스러웠다.  


질퍽질퍽한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빠져나오기는커녕 더욱 침몰하는 듯했다.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웃음도 잃어가고, 분노할 기운도 없어졌다. 감정 불구, 감정 장애,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누구보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 자부했지만 어느새 생전 처음 느껴보는 무기력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삶에 대한 의욕도, 희망도 없이 그저 아이들 때문에 억지로, 근근이 버티는 삶이 계속되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언제부터 잘못된 거지?’ 


수차례 자문해봐도 딱히 명확한 원인도, 해결책도 없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결혼 13년 차, 건강한 남매 자녀가 곁에 있고, 집-회사-가정-교회 밖에 모르는 성실한 남편도 있고, 집도 있고, 차도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정도면 큰 부족함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과도 별문제 없이 지내는 편이다. 


대체 뭐가 부족해서 이러는 건지, 배부른 투정을 부리는 건 아닌지... 자책감이 들었다. 결핍이 없는 평탄한 환경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현재의 나의 상태를 더더욱 인정하기 싫었고,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답답했다.
화가 났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이제는 제발 이 삶을 벗어나고 싶었다.

족쇄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는
이 우울감을 떨쳐버리고
긴 무기력감의 터널에서
정말이지 빠져나오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평생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뭔가 결단이 필요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우울함 무기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심리학, 철학, 뇌 과학, 인문학, 육아서 등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유명하다는 강사들의 강연도 틈날 때마다 찾고,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 비해 실망스럽게도 나의 상태는 여전했다. 내가 원하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보려고 부지런히 삽질한 기분이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이라도 편히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에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갖은 자책감, 억울함, 괴로움 등의 감정을 다 내려놓았다. 내가 나를 다독여주고, 인정해주니 의외로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간신히 일으켜 억지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햇빛을 쐬며 걷고 또 걸었다. 따릉이를 타고 한강공원을 달렸다. 이렇게 조금씩 신체활동을 늘려갔다.


그동안 방치시켰던 불편한 증상들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일찍 잠을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다. 그토록 애정 하던 커피를 큰 맘먹고 과감하게 확 끊었다. 건강이 점차 회복되면서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마음에도 한 줄기 햇빛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끝이 없어 보이던 기나긴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 눈에 띄게 일어난 변화가 아닌,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진행되었다. 감격스럽게도 그토록 바라던 에너지 넘치는 예전의 나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기고, 먹고 싶은 음식이 늘어나고, 관심 분야가 생겼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바닥을 치던 자존감도 점차 회복되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정말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자연의 아름다움, 계절의 변화에 조금씩 마음이 반응하고 움직이고 감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긴 슬럼프가 끝나고,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심리적으로 바닥을 찍는 경험은 참 소중했다. 나를 점검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었고, 예전보다 훨씬 견고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끝이 아닌,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다시 슬럼프가 찾아온다 해도 두렵지 않다. 잠시 방황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거창한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이다. 지금에라도 당장 즉시 실천 가능한 현실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일반적인 심리학, 에세이 책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뜬 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고, 지나치게 포괄적인 편이긴 했다. 


늦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시작하라, 당장 여행을 떠나라 등의 제시된 해결책을 당장 적용하기에는, 엄마인 나에게 전혀 현실성 없고 오히려 사치로만 느껴졌다. 괴리감에 마치 두 번 죽이는 꼴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현실을 잘 아는 애 엄마의 입장에서 손쉽고 실천적으로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슬럼프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그 이유도, 원인도 찾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하지만 이제 그 기나긴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고, 한 걸음 물러나서 보니 조금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래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에게 왜 그렇게도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지속되는지를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다. 



엄마이니까 포기했던 것들

엄마이기에 포기하지 말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엄마답게 누리길


그간 나의 경험이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엄마들에게 손을 뻗어 도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삶의 의욕을 꺾는 현재의 슬럼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부족함 투성이의 못난 엄마인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기다려준 사랑하는 다호 단비, 그리고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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