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3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아직도 나는 너의 답장을 기다려

by 구작

그해 여름, 너와는 모든 게 우연이었다

우리는 남녀가 마음을 키우기에는 어려운 장소와 상황에서 만났다

같은 공간에서 베란다와 부엌처럼 서로에 닿지 못한 채 우리는 사나흘을 보냈었다

그러다 어느날 밤, 우리 병실의 한 사내가 우뚝 솟아올랐다

그는 침대 위에 서서 구령을 외치고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의 손짓은 허공을 갈랐고 간호사실은 비상이 걸렸다

그가 병원을 뛰쳐나간 듯 했다

나이트 근무 간호사들은 그를 찾아 뛰어다녔다


소란을 틈타 담배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한 줄기 하얀 연기를 짙은 밤 속으로 불어올렸다

"휘이이"

내 입에서 나는 소리인가?

다시 "휘이익"

병실 옆 침대에서 본 실루엣이 검은 구석에도 있었다

그였다

그를 설득해 병실로 데려갔다

그를 본 간호사 얼굴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며칠 후 저녁 준비를 위해 마트를 찾았다

음료 코너에서 그녀 얼굴이 보였다

그날 밤 열기는 없어졌고 제복만큼 하얀 얼굴로 소주를 집어 들고 있었다

계산대에 거의 동시에 섰다

눈이 마주치자 알아본 듯 했다

'인사를 해야 하나' 서로의 눈에서는 같은 고민이 비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 동네 사시나 봐요"

-네. 근처예요

"아 저도 요 위에..."

그렇게 시작됐다

그녀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나도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얼굴에 그늘이 보였다

나는 잘 자는 사람이었다

대학 때 지독한 불면증을 앓았었는데 그 끔찍한 기억이 그녀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줬다

그녀는 떨치지 못한 과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과거는 참 지저분하고 지독하며 예후가 좋지 않은 남자였다

우리는 때로 같이 밤을 지샜다

서너 시간 자고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웃었다

"고맙다"고도 했다

우리는 같이 밥을 지어먹고 동네를 산책하기도 했다

근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그녀 생일을 축하해줬다

인터넷에서 주문제작한 한 쌍의 커플 피규어를 선물했다

그녀는 나와의 모든 것에 기뻐했다. 행복하다고 했다

모든 게 우연이자 새로운 즐거움이라고 했다

동네 가까이에 그렇게 예쁜 카페가 있는 줄 몰랐고

병원이 보이는 저 높은 언덕에 그렇게 로맨틱한 레스토랑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자기를 닮은 피규어를 제작할 수 있는 것도 몰랐다

우리의 다이어리는 모두 날것으로 채워졌고 우리의 감정도 날것이었다

서스름 없었고 속도도 빨랐다


40여 일이 지났을까...

"호주로 가고 싶어"

......

당황스러웠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는 언젠가 떠날 줄 알았고 이렇게 불쑥 그 때를 말할 줄 알았다

그 다음부터가 더 놀라웠다

병원을 곧바로 그만 두더니 본가로 이사를 했다

싸이 친구는 깨졌고 내 전화는 받지 않았다

떠났다는 것을 두어달 후에, 같이 떠난 친구 홈피에서 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저는 누구누구의 친구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쪽지를 드립니다. 저는 누구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된 반죽을 주무르듯 꾹꾹 눌러 구차하지 않게 쓰려 노력했다

잠 못 잔 날이 수십 일이었고 병원과 동네를 떠돈 지 수십 일이었지만

그녀에 닿고자 한 내 쪽지는 단 두 줄 이었다.


"안녕하세요, 얘기 들었어요. 00가 @@씨에게 많이 고마워해요.

호주 가서 연락 한다고 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이따금 그녀와 친구 홈피에 호주 소식이 전해졌다




다시 나는 홀로 남겨진 거고

모든 추억들은 버리는 거고

역시 나는 자격이 없는 거지

거짓말 음

우우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우우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우우우우우

찬 바람에 길은 얼어붙고

우우우우우

나도 새하얗게 얼어버렸네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녀의 과거 남자는 정신병자였다

개인적 원한을 1도 담지 않고 팩트를 말해도 그는 정신병자였다

2년 넘게 그녀는 그의 손아귀에서 고통 받다가 나를 만나기 1개월 전에 이별을 통했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밤마다 그녀 집앞에서 창문을 지켜보다가 새벽에 출근했다

나와 그녀가 지새우던 밤에도, 같이 잠들던 새벽에도 그는 우리를 봤다

그녀는 그런 이 땅을 떠나고 싶었다

"호주 가서 연락 한다고 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철석같이 믿었었는데...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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