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뒤집어 편에서 삼겹살 굽기의 최대 난제 몇 번 뒤집을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고기를 구울 때 가장 큰 고민은 '어느 정도가 적정 굽기이냐'아닐까요. 너무 팍 익히면 퍽퍽해지고 너무 덜 익히면 질겅질겅 하니까요. 오늘은 '적정 굽기'에 대해 알아봅니다.
시간이 없는 분을 위한 오늘의 한 줄 요약입니다.
"우리나라 돼지고기는 바짝 안 익혀도 되니까 두껍게 해서 드실 때는 심부온도 65도(미디엄)로도 한 번 드셔 보세요"
돼지고기 굽기의 정도 (출처 : pork.org, 경욱의 브런치)
두꺼운 돼지고기도 속은 부드럽고 촉촉하게!!
얼마나 자주 뒤집느냐가 얼마나 골고루 잘 익힐 거냐의 문제라면 팡팡 터지는 육즙은 얼마나 익히느냐(열을 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테이크에는 심부온도(Internal Temperatur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두께 편에서 말한 것처럼 스테이크의 기본 두께는 3.5cm, 일반적으로는 그 이상이기에 겉은 바싹 태워도 속은 제대로 익지 않아 덜 익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테이크의 익힘 정도(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어, 미디엄, 웰던)는 스테이크 겉의 온도가 아닌 속의 온도인 심부온도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출처:Just cook)
돼지고기도 두께를 3cm 이상으로 두껍게 하면 스테이크와 같이 굽기 정도를 다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삼겹살을 바싹 구워 먹는 것과는 달리 미디엄으로도 먹어볼 수 있는 것이죠.
경험적으로 우리는 삼겹살을 빠삭해질정도로 오래 구우면 퍽퍽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좀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리 온도에 따른 수분 손실과 근육의 수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즙 팡팡? = 수분 팡팡!
조리 온도에 따른 수분 손실 (출처:The Food Lab)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육즙 팡팡을 위해서는 고기 내에 충분한 수분이 남아있어야 합니다. J. Kenji Lopez-Alt가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심부온도 66도에 도달하기 시작하면 수분 손실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웰던 이상으로 바짝 구운 고기에서는 수분이 너무 많이 손실되기 때문에 팡팡 터지는 육즙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조리 온도에 따른 근육의 수축 (출처:ThermoBlog, 경욱의 브런치)
고기에 열을 가하면 수분의 손실뿐만 아니라 근육의 수축 또한 진행됩니다. 위 사진은 동일한 사이즈로 자른 동일한 부위의 고기에 열을 가한 결과입니다. 열을 가하면 가할수록 점점 더 근육이 수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유식한 말로 '고기의 연도(Tenderness)'라고 말하며 열을 많이 가할수록 '전단력이 급속히 증가한다'고도 표현합니다.
수분과 근육의 수축 두 가지를 합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웰던(71°C, 160°F)을 기준으로 익힐경우 수분 손실도 18%로 가장 많고 근육의 수축도 많이 진행되어 한눈에 봐도 뻑뻑해 보입니다. 반면에 미디엄 웰(66°C, 150°F) 정도만 익혀도 수분은 12% 정도만 손실됐고 근육의 수축 정도도 웰던보다 훨씬 더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디엄(60°C)에서 웰던(71°C)으로 올라갈수록 수분의 손실과 근육의 수축이 급격히 진행되기에 질감이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할 때 71도를 넘기면 실패로 간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돼지고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돼지고기 바싹 익혀먹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 이제는 자주 들어보셨죠? 우리나라 돼지고기에서 기생충이 발견된 지 아주 오래됐기 때문에 이제는 굳이 고온으로 조리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다만, 외국의 경우 각 국가마다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돼지고기 굽기의 정도 (출처 : pork.org, 경욱의 브런치)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63~71도 정도가 섭취하기 좋은 온도라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농무부는 2011년 이전까지는 71도 이상으로 조리하라고 했지만 이를 2011년에 바꿨습니다. 그러니 따지자면 미국에서는 돼지고기 바싹 안 익혀 먹어도 된다고 공인받은 지 10년이 된 셈입니다. 참고 삼아 말씀드리자면 미국 양돈조합(Pork Checkoff)에서는 돼지고기 굽기의 정도와 심부온도를 위 사진과 같이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미디움정도 굽기보다 바싹 익혀먹는 것이 좀 더 익숙합니다. 삼겹살은 원체 기름이 많기 때문에 바싹 익혀먹어도 상대적으로 덜 질겨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삼겹살의 아름다운 점이 발견됩니다. 삼겹살은 똥손이 대충 구워도 상대적으로 덜 망쳐지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더 맛있게' 먹는 것이므로 좀 더 알아봅시다.
돼지고기 조리 온도에 따른 단면의 변화(출처:Serious Eats)
위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레어나 미디엄 레어에서는 아직 지방이 충분히 녹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삼겹살 같이 지방이 많은 부위는 미디엄 웰 이상으로 조리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지방은 어느 정도 녹아야 풍미가 더 올라오기도하고 특히 삼겹살은 지방이 많아 충분히 녹여주지 않으면 오히려 식감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싹 익힌 삼겹살과 미디엄 웰 정도로 익힌 삼겹살을 비교하면 미디엄 웰이 더 부드럽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특히 삼겹살 이외에 안심이나 등심같이 지방보다 살이 더 많은 부위에서는 미디엄 정도로 익혀 먹어보면 바짝 익힌 것과는 분명히 다른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처:Griller's Spot)
굽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심부 온도계가 필수입니다. 심부 온도계로 수차례 실험을 하면서 심부온도와 굽기 정도를 체득한 사람이 아니라면 단순히 핑거 테스트를 이용해 고기의 촉감만으로 굽기를 가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심부 온도계가 있다면, 굽기의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고 고기를 망칠 일 없이 안전하게 미디엄부터 웰던까지 조절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고기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심부 온도계는 꼭 하나쯤 구비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대충 구워 먹는 것보다 정확히 온도를 보면서 먹으면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거든요. 특히 돼지고기 안심같이 기름이 적은 부위는 심부 온도계 없이 감으로 구웠다가 웰던 이상이 되면 너무 뻑뻑해서 먹기가 아주 힘들 수도 있으니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는 약간의 투자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