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욱 Oct 08. 2021

맛있는 고기를 위한 고기 잘 굽는 법 세 가지(구이편)

8화 - 고기를 불판에서만 굽나요?(팬 시어링, 수비드, 리버스 시어링)

고기 맛있게 먹는 법은 '좋은 방법으로 잘 굽는 것'을 알아야만 가능합니다. 앞서 부위 편, 두께 편, 그 외 편, 실전 편을 통해서 좋은 삼겹살 원육을 고르는 법을 알아봤습니다. 좋은 고기를 골랐으니 이제는 고기 맛있게 굽는 법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지난 굽기 정도 편에서는 적정 심부온도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심부온도에 도달하기 위한 세 가지 굽는 방법, 팬 시어링, 수비드, 리버스 시어링에 대해 알아봅니다.


시간이 없는 분을 위한 오늘의 한 줄 요약입니다.

"3cm 이상의 두꺼운 고기를 구울 때 초보들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리버스 시어링(Reverse Searing)입니다."


고기는 불판에서만 굽나요?

(출처:중앙일보)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를 불판에서 굽습니다. 고기 불판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원초적인 솥뚜껑 불판도 있고, 삼겹살에 특화되어 기름이 잘 빠지게 제작된 불판도 있고, 심지어는 불판 끝에 계란이나 치즈를 요리할 수 있도록 제작된 불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기는 꼭 이런 불판으로만 구울 수 있는 걸까요?


가장 빠르고 간단한 팬 시어링(Pan Searing)

굽기의 가장 기본은 불판 위에서 굽는 것입니다. 시어링(Searing)은 '타는 듯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불판 위에서 고기 표면의 마이야르 반응을 내는 것입니다. (마이야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온도 편 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리스 팬, 무쇠 팬 등 재질은 다를지 몰라도 팬 위에서 조리하므로 이를 팬 시어링(Pan-Searing)이라고도 합니다.

  

팬 시어링은 기본인 만큼 가장 빠르고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복잡할 것 없이 불판을 달구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려서 잘 구우면 끝입니다.

(출처:Lazy-Q Life)

팬 시어링의 가장 큰 단점은 골고루 제대로 잘 익히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숙련된 셰프들이야 고기의 두께가 두껍거나 일반 가정용 프라이팬을 이용하더라도 오른쪽 사진처럼 완벽한 굽기의 스테이크를 구워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고기가 조금만 두꺼워져도 왼쪽 사진처럼 속까지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육즙이나 씹었을 때의 질감을 위해 두꺼운 고기를 선택했는데 제대로 익히지 못할 거라면 두꺼운 고기가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두껍지 않게 하더라도 제대로 익혀먹는 게 낫습니다. 혹여나 어떻게 그럭저럭 속까지 익힌다 하더라도 보통 사람이 오른쪽 사진처럼 골고루 원하는 정도의 굽기로 익히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수비드입니다.


더 이상 편차 없이 균일하게 수비드(Sous-Vide)

(출처:FoodandWine.com)

수비드(Sous-vide)는 프랑스어로 '진공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영어로 하면 'Under vacuum'입니다. 재료를 진공으로 포장한 상태에서 온도를 일정 온도로 유지해주는 수조에 넣고 장시간 조리하는 기법입니다. 수비드를 이용하면 수온을 일정한 온도로 제어했기 때문에 물속에서 어느 곳은 많이 익고 어느 곳은 적게 익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수비드 방식으로 고기 속을 원하는 정도로 균일하게 익힌 뒤, 마지막에 팬 시어링으로 마이야르 반응을 이끌어주면 완벽하게 잘 익은 맛있는 고기를 맛볼 수 있습니다.


간혹 가다가 "수비드 그거 뭐 물속에 넣고 조리하는 거니까 수육이랑 비슷한 거 아니냐"하는 분도 계신데 큰일 날 이야기입니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고기를 진공 처리하기 때문에 물과 직접 닿지 않습니다. 수비드와 수육은 전혀 다릅니다.


수비드의 가장 큰 장점은 엄청난 경험치가 쌓이지 않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딱 원하는 온도로 고기를 구워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레스토랑에서야 미리 수비드로 조리한 스테이크를 시어링만 해서 낼 수 있으므로 짧은 시간 안에 대량으로 빠른 서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큰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죠.


수비드는 사실 가장 큰 단점이 존재하는데 수비드 전용 장비를 추가로 구매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수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수비드 머신, 그리고 진공포장기까지 한 세트로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수비드 머신은 최소 10만 원 정도부터 시작하고 보통 30만 원 정도 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고기 한 번 잘 먹어보겠다고 이 장비들을 모두 갖추기에는 좀 애매합니다. 그 돈이면 차라리 고기를 더 사 먹든 밖에 나가 사 먹어야죠.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큰돈 써서 수비드 장비 사지 않는 한 균일하게 잘 익혀볼 수는 없는 걸까요.

아직 포기하기 이릅니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리버스 시어링'입니다.


똥멍청이도 무조건 잘 익힐 수 있는 리버스 시어링(Reverse Searing)

리버스 시어링(Reverse Searing)은 말 그대로 시어링(Searing) 방식을 거꾸로 적용합니다. 팬 시어링이 고기의 외부에서부터 열을 가해 내부까지 익히는 방식이었다면 리버스 시어링은 이를 역으로 안을 먼저 익히고 나중에 밖을 익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팬 시어링과는 달리 익히는 방향이 반대인 것입니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해 저온으로 속을 먼저 익히고 나중에 고온의 온도에서 짧게 시어링을 해서 마무리합니다.


리버스 시어링의 가장 큰 장점은 똥멍청이도 실패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리버스 시어링의 핵심은 속부터 잘 익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두꺼운 고기라도 덜 익을 것에 대한 우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팬 시어링의 가장 큰 단점이었던 겉은 탔는데 속은 제대로 익지도 않은 상황이 절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 많은 셰프가 아니라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도, 심지어는 똥멍청이가 와도 절대 고기를 망칠 일은 없다는 것이 리버스 시어링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래서 승우아빠 덕에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요리과학자 J.Kenji Lopez-Alt는 스테이크를 굽는 최고의 방식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추가적인 돈이 들지 않는 리버스 시어링

리버스 시어링은 돈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새로 돈을 줘가면서 수비드 머신을 사지 않더라도 집에 있는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하면 리버스 시어링을 할 수 있습니다. 수비드에서 우리가 얻고자 했던 목표는 고기를 균일하게 잘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리버스 시어링 방식을 이용하면 수비드 머신이 없어도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을 이용해서도 충분히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단, 제대로 된 리버스 시어링을 위해서는 심부 온도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심부 온도계는 만원 정도 선이므로 수비드 머신의 1/30 정도만 투자하셔도 됩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리버스 시어링 하는 법

리버스 시어링을 하기 위해서는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의 온도를 93도~135도 정도로 설정합니다.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심부온도에 도달할 때까지입니다. 리버스 시어링은 마지막 시어링이 이뤄지기 전까지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속을 제대로 익힌다는 개념이니까요. 시간보다는 심부온도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의 온도가 낮을수록 고기는 더 균일하게 잘 익혀지겠지만 시간은 그만큼 더 걸리겠죠? 원하는 조리 시간과 익힘 정도를 고려해서 세팅하시면 됩니다. 심부 온도계로 원하는 온도까지 도달했고 속이 제대로 익었음을 확인하면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꺼내서 마지막으로 고온에서 시어링을 해주면 끝입니다.


(출처:SeriousEats)

실제로 리버스 시어링 방식을 사용할 때는 마지막 시어링을 감안해서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타깃 온도보다 조금 더 낮은 온도에서 꺼내 주면 됩니다. 예를 들면, 타깃이 미디엄(60도)이라면 심부온도 55도 정도에서 꺼내는 것입니다. 각자 스타일에 따라 마지막 시어링 과정을 얼마나 거칠 것이냐에 따라 언제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꺼낼지가 결정되겠죠. 타깃이 60도인데 60도에 맞춰서 꺼내면 마지막 시어링 과정에서 원하는 온도를 넘어버리고 맙니다. 요리고자들은 오버 쿡 막자고 리버스 시어링을 하는 건데 리버스 시어링 하고도 오버 쿡이 되면 정말 슬프니 이점 꼭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리버스 시어링의 유일한 단점, 시간

리버스 시어링에도 단점은 존재합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팬에다 올려놓고 했으면 10분 안에 끝냈을 과정을 최소 30분~50분 정도 투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없다면 팬 시어링으로 빨리 구워서 빨리 먹는 게 더 적합한 조리방법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좀 더 투자하더라도 결과가 검증된 방식을 선호합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워졌네, 이번에는 좀 덜 구워졌네 후회하기보다 제가 원하는 딱 맞는 굽기로 최상의 고기를 먹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꺼이 리버스 시어링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누군가는 고기보다 시간이 소중하겠지만 저는 고기가 더 소중합니다. 저는 한점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ㅎㅎ 


고기 굽기에 하나뿐인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 취향은 찾는 게 좋다

고기 굽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리버스 시어링이니 수비드니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먹어도 됩니다. 어차피 고기는 대충 구워도 맛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조리방법들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먹던 방법만 진리인 줄 아는 것은 좀 안타깝습니다. 다른 조리 방식이 주는 질감이나 느낌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리버스 시어링을 알고 나서 '내가 그동안 먹던 고기들은 잘못 구워졌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리버스 시어링을 통해서 심부온도를 조절하는 법을 알게 되면, 고기 생활이 달라집니다. 저는 리버스 시어링 이전까지는 단순히 익은 고기와 안 익은 고기의 구분만 가진 흑백의 영역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리버스 시어링을 만나고 나서는 흑과 백 사이의 무수한 색들을 알게 되고 그라데이션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개념적으로만 갖고 있었던 미디엄, 웰던 같은 단어들이 각각 질감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 취향은 정확히 어느 지점이었는지도요.

   

아직 리버스 시어링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으셨다면, 언젠가 꼭 한번 시도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참고 영상)

승우아빠 - 리버스시어링

https://www.youtube.com/watch?v=TVbiWOYqMAA

승우아빠 - 어떤 방식이 제일 맛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REY5skEyIpM


참고사이트)


수비드

https://guide.michelin.com/kr/ko/article/features/%EC%88%98%EB%B9%84%EB%93%9Csous-vide%EB%9E%80


https://www.seriouseats.com/first-thing-to-cook-with-sous-vide-immersion-circulator-essential-recipes


리버스 시어링

https://www.seriouseats.com/how-to-reverse-sear-best-way-to-cook-stea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