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바비에(Caly Bevier)라는 16세 여성이 America's Got Talent라는 TV쇼에 나와서 자기를 소개한 말이다. 그녀는 독특한 음색과 범상치 않은 스토리로 골든 버저를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난소암을 이기고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말한다. 인상적인 영어 표현이라고 평소에도 생각해 왔다.
아침마다 팔자에 없는 CNN 뉴스를 보게 된다. 거기서도 요즘 저 생존자 Survivor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COVID-19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다. 희생자 Victim이라는 말도 더불어 나오는데 한국 뉴스에서는 통상 완치자와 사망자로 일컫는다. 뭔가 느낌에 차이가 있다. 생존자와 완치자, 희생자와 사망자.
대한민국의 COVID-19 대응은 크게 두 가지에 의해 지탱되는 것 같다. 적정 수준의 시민의식과 발달된 의료 시스템이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완벽하게 일탈과 방종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자발적인 시민 참여로 방역이 이루어지고 있고, 진단과 치료에 아직까지 대란은 없을 정도로 의료가 버텨주고 있다. 물론 영원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서양의 삶에 대한 정의는 투쟁을 통해 영위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투쟁을 하다 보면 강력한 적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COVID-19나 암 같은 질병, 전쟁 같은 사회적 상황 등이 될 것이다. 개개인의 투지와 극복 의지가 난관을 극복할 도구임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다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승에 대한 찬사가 담긴 생존자라는 말과 석패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희생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닐까?
좀 다르게 우리는 누군가 관리하고 있는 조직 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사망자와 완치자는 병 걸려 죽은 사람과 치료를 통해 다 나은 사람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의료행정의 입장에서 실패와 성공을 양분하는 표현이다. 개개인이 그동안 살아냈던 삶의 흔적과 극복을 위해 용기를 내고 애썼던 마음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통계를 위한 수치로 남은 사람들의 인생은 안쓰럽고 덧없기까지 하다.
먼 나라 미국에는 병원에 시체가 쌓여가고 어쩌고 하는 인터넷 소식이 있는데 안 가봤으니 진위 확인은 안 된다. 만약 사실이라도 그 비참한 사후 처리 속에서 희생자로 칭해지는 사람들의 삶은 꽤나 가치 있게 느껴진다. CNN 뉴스에서는 We remember(기억하겠습니다) 같은 코너를 만들어 희생자들의 삶을 소개하고 가족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정치 쟁점화하는데 몰두하는 일부 몰지각한 언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다른 언어이기 때문에 표현이 다를 뿐일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을 비난하거나 폄하한다기보다는 인간의 삶에 무게를 둔 듯한 외국 언어의 표현이 더 맘에 든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니, 우리나라의 행정 시스템이니 하는 것들은 이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다. COVID-19는 우리에게 이미 와 버렸다. 우리는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한다. 그 투쟁에 서로 박수와 응원을 보내면 좋겠다. 함께 생존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