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새벽 Jun 01. 2024

창가에 초록이 들어차다

촉박한 일정의 번역 의뢰가 들어오면 책상 앞 붙박이 신세가 된다. 


이번 작업은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은데다 마감일이 수업 요일과 겹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집중해서 진도를 빼야 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환경기술 관련 용어들이 빼곡한 텍스트가 머리에 쏙쏙 흡수되지 않고, 자판을 입력하는 속도가 자꾸만 더뎌진다.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건... 카페인과 눈힐링이다.  





커피를 리필하고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 있던 몸도 풀어보고

온 신경을 끌어모아 모니터 화면과 대치하던 시선을 창가로 돌려본다.  

봄을 지나 이른 여름으로 향하는 경계의 풋풋한 초록이 창문 가득 들어차 있다. 


지금 사는 집에서는 거실 창가로 감나무뷰가 펼쳐진다. 아파트 2층이라 나무 우듬지에 매달린 잎들의 물결을 눈높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작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딸아이 학교 문제로 기존 집은 세를 주고 연식이 오래된 학군지 아파트 단지로 들어왔다. 역사가 꽤나 긴 아파트라 생활에서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도 많지만 시간의 두께만큼이나 무성하고 촘촘하게 단지를 둘러싼 나무숲이 일상의 불편을 어느 정도 상쇄해준다.     

외출할 여유가 없을땐 나가서 단지 안을 한바퀴만 스윽 돌고와도 기분이 정화된다. 

작업이 많아 문을 나설 여유조차도 없을땐 잠시나마 창멍 타임을 가지기도 한다.  


초봄에는 단단한 가지를 뚫고 나오는 여린 나뭇잎순을 

봄에는 농도가 더해진 연둣빛 잎사귀들과 그 사이로 소박하게 피어나는 작은  감나무꽃들을 

여름에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가득 뒤덮인 초록의 절정을

가을에는 꽃이 달려있던 자리에서 주홍빛으로 영글어가는 감열매를 

겨울에는 가지마다 뒤덮힌 눈꽃을

창가에서 1열 직관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오늘 창밖은 초록물이 잔뜩 올라 짙음을 더해가는 잎들이 여유롭게 찰랑거리고 있다.  



이전 01화 나른함을 떨쳐내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