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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 Klarblau Jul 19. 2024

이들의 평생을 좌우하는 건 나.

최대한 다 챙겨준다


치약, 끝까지 다 쓰시는 분들이 얼마나 있으실까요?

다 먹은 케첩, 통 잘라서 끝까지 다 긁어먹는 분?



얼마 전 화장품 하나 다 써서 속을 갈랐는데

상표는 가려주자

어마무시한 양이 들어있더라고요.

(제 속도로는 6개월은 족히 쓸 양...)


안 뜯었다면 그냥 버렸을 내용물


이 내용물은

공장에서 똑같은 성능으로 생산되었는데

중력이나 마찰력이나 어떠한 이유로 통 밖으로 나오는 순서에 밀려


저의 피부에 쓰이지 못하고 통 벽에 아직도 붙어있고

쓰레기 통으로 갈 처지인 것 이잖아요?



이건

실력 차이가 아니라

실력은 같은데 단지 위치의 다름에 의해 이들의 운명이 갈린 것이잖아요.



인간 사회에서도 많은 경우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사람은 저런 공산품처럼 똑같지는 않지만


어떠한 기준에 의해서 같은 사람들이

우연히 혹은 외부의 선택 결정에 의해

포지션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경우요.


어디에 있느냐가 쓸모를 좌우한다


존재의 위치가 본인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잘 된 경우에는 운 좋았다고 하겠지만

잘 안 된 경우에는 억울하기도 해요.



그래서

최대한 전 제 능력이 되는 한 제 손에 들어온 물건들을 최대한 써 주는 마음이 생겼어요.

이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제 자신이더라고요.



어떤 쌀알은 내 부엌까지 와서 쌀 씻을 때에 하수구에 떠내려가고,

씻겨지고 밥솥까지 가서 잘 익어서 밥이 된 쌀도 어쩌다 밥 솥 벽에 남아 끝까지 주걱에서 긁히지 못해서 밥솥 씻을 때에 같이 하수구에 떠내려가지 못하고

그렇게

어떤 쌀은 내 몸이 되고 어떤 쌀은 내 몸이 되지 못하는데


제가 좀 조심해서 쌀을 씻고, 주걱으로 밥솥의 마지막 한 알까지 다 긁어주면

그 쌀들은 모두 제 몸의 양분이 될 테니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조금 더 노력해서 이들을 다 챙겨주는 거죠.

힘든 일 아니잖아요?!


그렇게 나도 아끼고 자원도 아끼고...




우선 이것들이 최대한 공기와 접하지 않도록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한 번 이제 새 공기와 닿았던 것이니 품질이 좀 더 빨리 변하겠죠?

랩으로 최대한 꽁꽁



통이 튜브형인 경우는 대부분 내용물이 공기와 최소한으로만 접촉하게 하려고

입구는 작게, 그 외 부분은 구멍도 없게 만들어져서 끝까지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통이 단단한 경우는 짜 쓸 수도 없고, 입구가 작으니 입구에서 통 속을 퍼 내어 쓸 수도 없잖아요.


윗부분을 잘라서, 쓸 때마다 열고 묶고의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제 몸도 뇌도 좀 더 움직이며

이들을 최대한 써 주기로 했어요.




어렸을 적, 그런 종류의 물건들을 다 썼다고 생각하고 잘라 보았을 때

그 통 안에 엄청 많은 양의 내용물이 남아있었어서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럼에도

그때엔 그런 걸 다 퍼 쓰는 것이 구질구질하다는 시선에 뭔가 저항없이

그 후로도 튜브형 물건 내용물이 안 나오면 대략 버렸던 것 같아요.


근데 성인이 된 후 언젠가부터는 그것들을 중간에 잘라서라도 끝까지 싹싹 쓰게 되었어요.

어디선가 그렇게 사는 분을 보거나 들었던 거죠...



근데그런 경우, 조금이라도 덜 변질되었을 때에 빨리 다 쓰려고

평소에 쓰던 양보다 퍽퍽 많이씩 쓰게 되는데, 

그런 기분은 좀 별로예요.

'어차피 버려질 것을 써준다'는 생각으로 뭔가 평소의 양만큼 쓰던 습관의 자물쇠를 풀어버리는 느낌?


그럴 때마다,

이 형태의 패키지 디자인을 자신의 제품 용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자원 낭비에 관한 고려는 안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곧 기업에 문의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기업에서는 뾰족한 해답을 갖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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