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리 Mar 31. 2023

31. 명상은 상처 입은 마음의 적군이 아니다

명상과 트라우마

호흡에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끌어모아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고통은 없다.

바즈라 아사나로 이완하는 자화상

*다소 조심스러운 주제이며 이것은 명상 일기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한 나의 관점은 철저히 주관적인 것임을 밝힌다.



예전에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배울 때 과정에 포함된 명상 지도자님의 특강을 들었다. 명상에 대한 간단한 이론 설명 후 다 함께 명상 시간을 가졌는데, 명상을 마치고 한 명의 안색이 유독 어두웠다. 는 소감을 나눌 때 좋지 않은 일이 떠올라서 힘들었다고 말했고, 특강 후 강사님과 따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르고 외국의 요가 관련 서적을 읽다 보니 이와 비슷한 사례가 나와있었다. 글쓴이는 명상을 하면서 과거 트라우마가 떠올라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하며, 명상에 앞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분히 그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명상에 대한 경험과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정적인 상태 혹은 명상이 익숙하지 않다면 잔잔히 가라앉은 수면 아래 잠겨있는 무언가가 들여다 보일 수 있다. 어떤 과거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걱정으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기에는 명상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점들이 아쉽다. 참고로 얼마 전 미국의 한 병원에서 항불안제, 항우울제에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들에게 명상 요법을 대신 처방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과 조금 다른 사례,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어릴 때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일을 비롯해서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몇 가지 끔찍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의 경우에는, 살아오면서 명상을 하는 시간 말고 '일상'에서 오히려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예를 들어 뉴스를 보다가 또는 어느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드라마의 대사를 듣다가, 어떤 장소나 길을 지나다가,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또는 꿈에서 불쑥불쑥 악몽이 소환되었다. 그것들은 과거로부터 죽지도 않고 또 와서 당장에 누가 의도적으로 괴롭힌 게 아닌 나를 스스로 옭아매게 만들었다. 고통스럽고 불쾌한 감각과 감정을 불러와 반응을 일으켰고 그런 일은 무수히 반복되었다.

내가 명상을 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명상이 마음의 토대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첫째, '당장의' 명상은 실질적으로 이런 효과를 가져왔다. 경험상 트리거가 작동되는 횟수 자체가 줄어들었고, 설사 무언가 떠오른다 해도 그것이 전처럼 신경을 예리하게 자극하거나 신체 반응까지 연결되지 않도록 방어막의 역할을 해주었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무겁고 불쾌한 감정의 덩어리가 머무르지 않고 투과되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을 위해 가만히 앉아 눈을 감은 이 시간은, 코 끝의 숨에 집중하는 이 순간은 나에게 안식처이며 살아있음 그 자체이다. 호흡에 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끌어모아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고통은 없다. 지나가버린 기억이나 앞날의 불안 따위는 머무를 자리가 없으며 그러므로 나를 괴롭힐 수 없다.  

둘째, '누적된(반복된)' 명상은 근본적으로 나의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맑아진 머리와 마음으로 전보다 더 강한 통찰력을 발휘하게 했다. 돌이켜보면 트라우마가 떠오를 때마다 나의 고통을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동시에 아무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소용돌이를 일으켰던 것 같다. 아니, 내 안에 그 두 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여다본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내가 행복하기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나는 과거의 상처를 바꿀 순 없다. 하지만 버티고 살아남아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을 소중히 할 수는 있다. 과거의 무게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있다. 단번에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나는 명상을 하며 이렇게 느꼈다. 명상은 상처받은 마음의 적군이 아니고 아군이다. 그중에서도 '힐러'이다.


**10분 명상 in 파드마 아사나

#명상80일째 & #명상157일째


이전 15화 33. 마스크 팩을 얼굴에 붙이고 명상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