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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Apr 07. 2023

33. 마스크 팩을 얼굴에 붙이고 명상을

명상의 조건

다른 부수적인 조건들은 명상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새벽이 아니어도 은은한 조명이 있는 방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아카르나 다누라 아사나2 자화상

때로는 마스크 팩을 얼굴에 붙이고 하는 명상도 나쁘지 않다. 찹찹한 감촉과 은은한 냄새가 감각을 자극하지만, 복잡한 생각의 바다에서 헤매는 것보단 오히려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마치 고민에 빠져 인상을 쓰고 길을 걷다가 향기로운 소나무 숲을 마주친 것처럼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 그래서 명상을 할 때 향을 피우거나 싱잉볼을 쓰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하며 납득이 되었다.

나는 향도 싱잉볼도, 오래된 사찰에 가면 처마 끝에서 영롱하게 달랑거리는 풍경 소리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집에서 명상을 할 때는 다른 아무것도 없이 그냥 한다. 단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너무 밝지 않은 은은한 조명뿐이다. 눈을 감아도 눈이 쉬지 못하는 지나치게 밝은 환경보다 살짝 어둑한 환경이 호흡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제까지의 경험 중에, 7년 전 명상 집중 수련을 하러 갔을 때 해가 뜨기 전 새벽 어스름에 했던 명상이 가장 좋았다. 세상이 고요한 가운데 마음이 진공 상태처럼 말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밀도 있게 의식을 호흡에 모을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 아니고 수업도 밤늦게 끝나는 날이 많아서 주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자정 넘어서 명상을 하고 있다. 밤 시간도 아침의 눈부심이나 낮의 시끌벅적함이 덜하다는 면에서 집중하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은 실제 내 마음 상태에 비하면 주요하지 않거나 전혀 무관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매일의 명상으로 알게 되었다. 캐럴송이 크게 울려 퍼지고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시내의 카페에서도 마음만 허락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고요해질 수 있다. 소설 '데미안'에서 수업 중에 자리에 앉은 채로 내면으로 잠수한 모습을 묘사한 것처럼. 다른 부수적인 조건들은 명상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새벽이 아니어도 은은한 조명이 있는 방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마음의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문이 어디에 있든 나는 기꺼이 가서 열 것이다. 


**10분 명상 in 파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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