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주변을 살핀다.
가장 긴장하게 되는 테이블 1순위는 어머니들 모임, 2순위는 굳은 표정으로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있는 엄마와 자녀이다. 그런 테이블 옆자리를 피하려는 이유는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도 그들의 대화는 언제나 음악 소리를 뚫고 원치 않게 깊숙이 들어온다는 점에 있다.
주말 아침
카페에 1등으로 도착했다.
자리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고민 없이 가장 좋아하는 벽 쪽 구석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흘러 열 한시 즈음이 되어 한 무리의 어머니들이 도착했다. 그 시간은 대부분 카페 자리가 없는데 주저 없이 홀로 앉아있는 학생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고 4인 좌석을 확보했다. 테이블이 떨어져 있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에서 그들의 수다 소리는 귀를 괴롭혔다.
주제는 <딴 동네 애들>이었다. 길에서 딱 보면 이 동네 애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옷차림이 다르고,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대화가 어떤 점을 표현하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대부분 아이가 학원에 올 때 추리닝 바지를 입고 온다. 옆 라인의 선이 몇 개인지는 제각각이라 그 차이를 구경하는 것도 때로는 재미있을 정도이니 운동복 바지는 이 지역 유니폼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종종 교복이 아닌 치마를 입거나 멋내기용 옷차림으로 학원가를 오가는 학생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 경우 대부분 공부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학원에 왔구나...라고 어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공감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거주지의 차이로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어머니들의 해석이 뜻밖이었고 그들의 차가운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또한, 이방인의 처지에서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내 옷차림과 아이들의 옷차림을 한번 살펴보기도 했다. ‘여기 앉아있는 나의 옷차림도 이곳 대치동에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대치동의 카페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의도치 않게 많은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세 명의 여학생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있다. 학원에 가기 전인 것 같았고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통해 그들은 타 지역 아이들이 아닌 대치동 거주 학생들 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든 생각은 ‘이 저녁에 참 부지런도 하다... 화장하고 지우는 게 귀찮아서 이 나이가 되니 선크림만 대강 쓱쓱 문지르고 다니는 데 밤늦게 언제 지우고 잘까’ 정도였다. 같은 상황을 보고 ‘대치동 애들도 다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학원에 공부하러 가는데 아니라 잘 보일 사람이 있어서 가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그들에게서 발견된 것은 바로 배려였다. 세 명이서 테이블을 붙여 앉지 않고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옆 테이블을 다른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려가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쯧쯧쯧'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 덕에 자리 잡기 어려운 시간에 카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한 사람은 그 점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또한, 가는 카페마다 유난히 자리가 없는 날이 있다. 불매운동이 있다는 스벅에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갔으나 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새로 오픈한 카페에서 비로소 자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두 명이 아이가 한 몸으로 밀착된 광경을 마주했다. 그들 역시 대치동 학생들이긴 하지만 아이를 내려놓고 집으로 가시는 부모님들은 이런 아이들의 속사정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으면 주변의 어머니들 모임에서 눈총을 쏘게 되고 그 아이들은 곧 자세를 고쳐 앉기도 하지만 그날 마주한 아이들은 알콩달콩 말싸움을 주고받고 결국 남자아이는 자신의 음료 잔도 정리하지 않고 먼저 뛰쳐나갔다.
그 아이들이 대치동 거주 학생들이라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그저 아이들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곳 대치동에서 역시 예의 바른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편의점에서 문을 잡아주고 뒷사람을 배려하는 아이들,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서 속도를 낮춰 기다려줄 때 가볍게 인사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만나는 날에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아이들도 저렇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그러기 위해서 엄마가 먼저 뒷사람이 이어 나오는지 살피며 문을 잡아주고 고마움의 표시는 어디에서든 잊지 않는다.
한편, 대치동 학원 건물 뒤편에는 금연을 지향하는 사회적 방향과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성인이 된 재수생인지, 입시의 불안감을 잠시 낮추고자 하는 현역 학생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많은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하니’라고 말하는 어른들은 없을지 모른다. 그 모습을 보고 ‘대치동에서 공부한다고 저런 것도 용서되는 것인가!’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으면...’이라는 호의적인 시각도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학원가라는 특수성을 배제하고 ‘흡연은 건강에 좋지 않고 중독성도 강하니 다른 방식으로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고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그저 할 뿐이다.
하나의 사건을 보고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자신의 인지적 틀에 따라 같은 사건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부모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그 아이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인지적 오류를 떠올려 본다. 그러한 개념들이 희미해졌을지라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우리는 어쩌면 흑백논리, 과잉 일반화로 아이들을 평가하거나 구분 지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만나는, 내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아이 역시 내 아이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결코 버릴 수 없다. 아이가 이성 친구에 대해 고민을 하거나, 친구들은 다 하는 화장을 나만 하지 않아 소외감을 느낄 때, 입시의 불안감을 낮출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이 없어 담배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러한 고민을 표현할 수 없는 자녀와 부모가 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시선과 따뜻한 배려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나의 고정관념과 성급한 일반화>를 돌아보고, 오늘도 부모로서, 배우는 사람으로서 한걸음 성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