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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준 Dec 30. 2016

내가 가르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10 적합한 것에 대해

중학교때 양영미쌤께서 말하신 것중에, 인터넷 보급되던 2000년대쯤 이야기인데, 앞으로 인강 활성화되면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교사 앞에 모셔두고 수업 들을테니 교사가 다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교사가 남아있는게 인터넷으로는 케어가 안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도 가끔 중고등학생들 가르칠 일이 생긴다. 사실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설명은 답지에 있고, EBS인강보면 잘가르치는 사람들 이빠이 있고,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의 훌륭한 설명이 구글에 치면 나온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가르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근데 사실이 꼭 중요할까?


여기서 이 질문이, 역설적으로 교육에서 먹히는것 같다=_= 초등학교때 마이너스 이런거 없었다. 중학교때 마이너스도 있지만 제곱하면 항상 0보다 크다고 했다. 고등학교때는 제곱하면 음수가 되는 것들이 나타난다.. 그럼 초등수학 중등수학 이거 다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은거 아닌가. 대학 와서 공부하다면 고딩때 극한개념을 입실론 델타 없이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시켰으니, 지금보니 고등학교 수학은 완전 사이비였구나라는걸 깨닫는다.


사례 몇가지 더 추가하면

- 1+1이 2인거, 그냥 초딩때 접시에 사과가 두개 있다.. 이렇게 설명하지만 막상 엄밀히 설명하려면 페아노 공리계부터 시작해야 된다카더라.

- 로피탈 정리, 수학의 정석에서 "자세한 증명과정은 고등수학 이상을 요구하므로 생략하고.." 이러는데 상당히 유용한걸로 유명하다.

- 중간값 정리, 이거 사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엄밀한 증명은 칼큘러스에서도 못한다고 하더라.


조금 거짓말 보태면 이런 느낌


이런거보면..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확하게'가 아니라, '이해하기 쉽게'에 가깝지 않나 싶다. 써놓고보니 우리가 교육에 대해 갖는 직관에 대해 상당히 역설적이다.


흔히 수학 답지를 보다보면 정말 논리적으로 빈틈없고 깔끔하다. 사실과 로직에 기반해서는 훌륭한 해설이다. 그러나 처음 공부하는 친구들에게는 "답지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답지는 '정확하게'라는 관점에서 작성되었다면, 교사로서는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야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답지에서는 모든 실수에 대해 고려하는 식으로 문제를 푸는데, 그냥 이해하기 쉽게 "자 x=1부터 먼저 해보고, x=2, x=3 이렇게 하나씩 해보면.." 이렇게 설명하면 사실은 이런 접근은 엄밀성이 떨어지는 설명이지만(Y교수님은 '논리 부족!'이러면서 틀렸다고 하실 것 같다..)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서는 좋은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정확하게'와 '이해하기 쉽게'가 양립하기 어려울 때, 두가지의 밸런스를 그때그때 유연하게 정할 수 있다는 점이 오프라인에서 교사로서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강점이 아닐까 싶다.


마치 적합한 빨강색 퍼즐이 필요하듯이 말이죵


'이해하기 쉽게'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적합한 것'을 가르치는 것에 나아갈 수 있다. 때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가르치는 것이 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 정확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냥 그 수준에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 꼭 필요한 것이 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필요하지 않지만 나중에 필요한 것이 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가르치지 않더라도 인터넷 강사가 할 수 없는 것들, 하다못해 우리가 공감해주고 힐링하는것.. 그런것이 적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짐콜린스가 강조했던 것과 같이, 적합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은 적합한 것이 아닐까. 학생에게 지금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답지나 구글링이나 인강이 할 수 없지 않을까. 그 점이 오프라인에서 내가 가르치는데 있어 강점이 될 수 있는, 결국 어떤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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