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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Mar 18. 2024

여행지에서 요가하고 각자 여행하는 가족 되다

요가 유랑기 1

지난주 속초로 떠나기 전 속초에 살고 계신 지인이 요가 일정을 보내주셨다. 코로나 시기 이후 원데이 클래스 요가도 많이 생겨서 등록해 놓은 요가원이 아니어도 여행 가면 요가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찾아본다. 1박 2일 여행 중에도 급하게 찾기도 했는데, 제주도에서 했던 야외요가가 퍽 좋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첫해, 장기화될 줄 몰랐다. 집단 모임이 금지되고 9시 이후 영업을 할 수 없을 만큼 텅텅 비었던 시기였지만 여름에 획진자가 줄어들었다.

속초 요가원에서

그 해 여름(드라마 제목ㅎㅎ), 청소년 아버지(남편) 회사는 부도났다. 청소년 아버지가 5월쯤이던가, 다음 달부터 백수 된다고 했다. 코로나로 수출도 줄고 자영업자들도 힘들다더니 그런 이유인가. 남들에게 이 얘기하면 다들 이렇게 생각한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지만, 당시 남편 회사는 두 번째 부도였다. 건축 자재 생산, 판매 회사였다. 건축 쪽 일이 그러한지 잘 모르지만 이 회사는 어음 때문에 부도가 났다. 이번에도 또 어음 때문이다. 첫 부도 때는 사장을 욕하고 남편에게도 화 내고 했는데 화도 안 나왔다. 다만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은 있는지 궁금했다. 어차피 난 그 회사 마음에 안 들었으니. 다른 회사 가면 그뿐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영업의 길을 걷고 있다.


부도로 백수가 된 남편이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다. 중소기업에 관행을 그대로 이어오던 회사는 여름휴가를 평일 하루 많으면 이틀에 주말 포함해서 3일 혹은 4일이 고작이었다. 그 때문에 결혼 10주 년에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커플 가족과 우리 가족이 다시 떠나기로 했던 신혼 여행지를 남편 없이 청소년과 나 둘만 다녀왔다. 그 이후로 남편과 다시는 여행 같이 가지 않으리라 이를 갈았다. 그랬으니 남편의 제안에 얼마나 놀랐던지. 뭐! 나랑 같이?! 왜?!! 싶다가도 한 편으로는 좀 안 됐기도 했다. 일주일도 쉬어본 적 없는 남편이니까. 퇴직금도 아마 안 나왔지 싶은데 우여곡절 끝에 수금한 돈으로 월급 정도는 받았는지 가자고 했다. 가족의 3박 4일 첫 장기 여행이다. 장소는 제주도. 첫 제주도 여행이기도 했네.


남편 고등학교 친구들 중 5명이 끈끈하다. 모두 대구를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자주 만났다.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라 몇 년 동안 캠핑도 신나게 다녔다. 지금 불어난 몸은 캠핑의 후유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캠핑 가서 조용히 앉아 있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끊임없이 먹고 수다 떨었다. 그들의 기준에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먹거나 책 읽거나로 비쳤겠지만 나에겐 그동안 시끄러운 여행에 진절머리 났다. 아이도 클 만큼 컸기에 그 마음이 생겼을지 모른다.

2016년 사진

남편이 제주도 여행 일정을 짜보라고 했다. 나는 하루에 하나만 돌아다니는 일정을 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이 보여주고 체험해주고 싶어 다녀봤지만, 어른들 말씀에 크면 기억에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피곤하기만 하지 정작 집으로 돌아오면 체험보다 그냥 놀았던 기억이 더 생생하고 즐거워했다. 평소 여해이 어려운 조카도 데려갔다. 남자아이 둘이라 물놀이가 제일이었다. 마스크를 끼고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마스크 없이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 모두 오랜만 자연에 몸을 맡기고 노는 시간이라 웃음이 끊이지 않아 보인다. 우리도 그랬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 장소는 ‘황우지 선녀탕’(이젠 해수욕 금지로 알고 있다)으로 바위가 마치 선녀탕처럼 나눠 있어 안전하게 놀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바닷물 짜서 리조트 수영 하고 싶다는 막말에 기겁했을 뿐.


아이들 일정만 넣을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그때쯤 요가 영상을 가끔 봤다. 요가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야외 요가 수련 일정도 올린다. 끌렸다. 이효리 배우 영향인가. 제주도에 야외요가 프로그램이 많다. 제주도 야외요가로 검색하고 미리 등록했다. 우리가 머무는 곳이 서귀포로 제주도 남쪽이었는데 반해 선생님은 제주도 위쪽 새벽요가를 주로 하신다. 초등학생들이 있는 가족이라 전문 수련자가 아니고 선생님이 있는 곳과 우리가 거리가 있어 중간쯤에서 만나기로 했다. ‘절물 자연 휴양림’이다. 습한 날씨에 나무에도 이끼가 많고 비가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풀에도 물이 많았다. 이런 곳에서 요가를 할 수 있나 했는데, 정자 안에서 요가를 했다. 피톤치드가 덕지덕지 온몸 구석구석 와붙는 기분이다. 남편은 시작하고 5분쯤 지나자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와 1년 가까이 문화센터에서 요가를 같이 한 청소년은 이미 지겹다. 요가의 스트레칭에 뻣뻣하다고 못 마땅해한 그니까. 조카는 유연하기도 하고 운동을 좋아해서 재미있어했다. 요가가 끝나고 차담 시간이 이어졌다. 청소년이 좋아하는 시간이다. 녹차를 진정 좋아한다. 차담 시간이 없었으면 더 싫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절물자연휴양림에서 요가 수업 중인 조카

요가가 끝나고 아이들은 휴양림을 좀 더 즐겼다.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는 엄마랑 여행 같이 가기 싫단다.

“엄마는 맨날 여행 가면 도서관, 책방, 요가밖에 안 해.”

아, 작년(2019년) 청소년과 둘이 여행 가서 요가는 아닌데 스트레칭하는 곳에 수업 신청하고 비건 햄버거 먹었구나. 이런…

“알았다, 다음부턴 같이 다니지 말자.”


4년이 흘렀다. 올해, 2월 남편 태국여행을 시작으로 다음 주 청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갔다. 그다음 주 나는 속초와 서울을 갔다. 3주 동안 우리는 가족 여행을 갔다. 분명 가족 여행인데 각자 떠났다. 다시 같이 떠나는 날이 올까. 취향 존중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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