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테비 May 03. 2024

머리 집게핀

�️ 스틸 라이프(靜物畵) 009. 머리 집게핀


코너스툴님께 받은 <머리 집게핀> 편지에 대한 짧은 답장입니다. 편지는 유로 서비스기 때문에 전문을 인용할 수 없는 점 이해 바랍니다.


4월 29일 카드 결제 알람이 떴다. 메일리 서비스 정기 결제. 몇 번째 정기 결제인지 모르겠지만,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네. 아, 9번째 편지가 왔으니까 3번째 정기 결제가 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이번 주 편지는 머리 집게핀이네. 언제 써 본 물건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편지를 열었다. 편지 끝에 미용실을 가겠다는 글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것에 대한 댓글 대신 답장을 쓴다.


안녕하세요? 코너스툴님

미용실은 잘 다녀오셨나요? 이번 주 편지도 잘 받았습니다. 머리 집게핀을 본 순간 나는 언제 써보고 쓰지 않은 물건인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코너스툴님과 제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는지 모르겠으나, 제 청소년 시절에는 깻잎 머리가 유행했고, 20대 때에 올림머리가 유행했습니다. 앞 머리는 깻잎처럼 옆 가르마를 타서 사선으로 내리고 뒷머리는 올림머리를 하고 머리 집게핀을 꽂았죠. 올림머리를 한 뒷머리 바로 앞으로는 머리를 붕 띄운 일명 뽕머리(?)를 했답니다. 그땐 저도 머리 집게핀 예쁜 것 한 두 개 가지고 있으면서 올림머리를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숱이 많지 않았어요. 모발도 가늘고요. 그래서 집게핀으로 머리를 틀어도 풍성하지 않아서 저는 집게핀 보다 일자핀을 주로 이용했습니다. 집게핀과 같이 유행하기도 했지 싶어요. 그 당시 고가의 머리핀으로 여겨질 가격이었습니다. 만 원이 넘었으니까요. 그 핀이 단단해 숱이 적은 제 머리도 고정시켜 줘서 애착 핀이었죠. 결혼하고도 사용했고, 아직 집에 있습니다. 일자핀이 유행이 아니라 고이 모셔두기만 했죠. 재질, 두께가 저에게 딱이기도 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예뻐서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다행히 녹이 슬지 않더라고요.


유행은 돌고 돈다잖아요. 다시 집게핀이 유행해서 사람들 뒷 머리에 꽂힌 모습을 볼 때면 저도 그 시절이 떠올립니다. 다시 돌아갈래? 묻는다면 괜찮다고 답하겠지만, 아련한 추억이 가끔 그립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있지만,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취업, 연애, 학교 성적까지 신경 써야 하지만 나조차 미성숙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컸겠죠. 그래서 저는 20대를 추억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제겐 집게핀이 저의 20대 전유물인 것 같아 새로 구입해 사용하지 않아요. 머리숱이 지금은 더 적기도 해서 아마 머리를 올리면 듬성해진 두상이 금세 표시 날지도 모르고요. 머리숱이 고민이네요. 아빠의 머리카락을 닮았는지 어렸을 때부터 머리카락이 한 번도 굵은 적이 없었습니다. 동생은 머리숱이 많아서 머리를 길렀지만, 저는 머리카락이 가늘어 단발로 잘랐죠. 우리 집은 희한하게 아빠가 딸들의 머리 스타일을 정했어요. 남성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여성 헤어 스타일을 아빠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죠. 여자니까 긴 머리여야 해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 바람은 동생으로 이루었으니 저는 거기서 자유로웠을지 모르죠.


머리카락이 약할수록 관리를 더 해야 하는데 저도 코너스툴님과 마찬가지로 미용실이 편하지 않는 공간이에요. 낯설기 때문에 미루다 미루다 가게 되는 곳이죠. 미용실에 가면 마치 꾸지람 듣듯 관리를 왜 이렇게 하지 않았냐부터 시술을 하라는 권유까지요. 예전에도 단골 미용실은 없지만, 지금은 더 없으니 더 편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작년 미용실 가고 아직 가지 않아 이제 한 번 갈 때가 되었는데 저는 다시 어디를 가야 할지 기웃거립니다. 머리카락이 푸석해 트리트먼트를 지난주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주 필리핀에 요가여행 다녀왔습니다. 묵었던 숙소가 필리핀에서도 시골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빗대어 말한다면 샤워실이 마당 한쪽에 공용으로 되어 있고 물도 몇 줄기로 나누어 졸졸 나와 샤워하기 불편했죠. 드라이기를 가져가지 않아 수건으로 말리니 머리카락이 더 푸석해지는 기분입니다. 여행 중 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면 미용실부터 가야겠어요, 했죠.


저도 코너스툴 님처럼 미용실을 빨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미용실을 다녀오게 된다면 답장으로 알려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항상 같은 말이지만 건강하시고요.


2024. 05. 03. 금요일

가정의 날임을 실감하며 안녕, 테비 올림



이전 05화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