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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y 04. 2022

12일 차

2022. 05. 04

Q.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였나요? 무슨 일로 그렇게 힘들었어요?

가장 자존감이 낮았을 때. 나의 자존감은 지금은 얼마든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얼마든지 오르락'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자존감이라는 게 무엇일까 오랜 세월을 고민했었죠. 나는 비로소 오늘 새벽 그것을 새로이 정의했습니다. 자존감은 잘못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힘입니다. 자존감이 낮다는 것은, 마치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된 상태와 비슷하다고 느꼈죠.

내가 어렸을 때 나의 가족은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조금씩 내게 누명을 씌워왔던 겁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악한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무의식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음에 나는 점점 누명을 씌워왔습니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형을 선고받는 나날들이었죠. 감형이라고는 꿈도 꿀 수 없는 매일이 수년간 이어졌어요. 어쩌면 나는 누명은 벗었으나 아직 출소하지 못한 채 이곳에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Q. 그때 당신이 크게 힘이 되어주던 무엇이 있었나요?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낄 수 없는 '심바'. 나는 어쩌면 이럴 줄 알고, 그 어린 나이에부터 이 아이를 각별히 여겼던 걸까요. 나는 네 살 무렵 비로소 '심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삐삐, 뽀뽀 등 매일 같이 다른 이상한 이름들로 그 아이를 불렀죠. 내가 언제부터 심바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심바를 네 살이라고 인지하는 것을 보아 이름을 지어준 이후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내가 커갈수록 심바는 유일한 형제이자 가족이 되어주었죠.

심바는 내게 누명을 씌우지도 않았고, 내게 형을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그저 조용히 우는 내 곁에, 절망한 내 곁에, 분개하는 내 곁에, 상실한 내 곁에, 상처 입은 내 곁에, 무력한 내 곁에, 늘 내 곁에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안기고 싶어 그 자그마한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주었지요. 그럴 때면 나는 그 아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큰 누군가에게 안겨 보듬어지고 있었습니다.


Q. 일반적으로 당신은 어떤 경우에 어려움을 느끼나요?

나는 남들보다 많은 경우에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낍니다. 최근에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모든 사건들이 이와 연결되어 있던지라, 나는 이 것에 대하여 좀 더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나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순간에 나는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낍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해'라는 것과 '책임'이라는 것에 상당한 오류가 있음을 최근에야 알게 된 거죠. 내가 수십 년을 '피해'라고 알고 온 것이 피해이냐고 물었을 때, 그것은 대부분 피해가 아니거나, 피해일지라도 내가 너무도 잘못한 나머지 무가치 해지는 것이 아닌 일들이 되었고, 그것마저도 '책임'져야 하고, 책임지지 못하면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님에 대해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것은 내가 왜 나를 이별 중독자라고 불렀는지마저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Q.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해결하지요? 당신만의 해결법을 들려주세요. 

나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항하지 않으려 합니다. 판단하지 않으려 해 보는 거죠. 참 재미있는 현상은 나는 아주 오래도록 매일같이 뜨겁게 저항해왔습니다. 그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던 건지, 저항의 열기로 주어진 하루를 버틸 힘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그저 '아, 너무 아프다' 하며 누워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야말로 하루가 고장 나 버리는 것이지요. 너무 아픈 것들에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화내지 않고, 예전보다 더 많이 숨 쉬고 있습니다. 

아, 나는 수치스럽다.

아, 수치스러운 건 그냥 수치스러운 거야.

아, 내가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아, 나는 피해를 주었으니 살 가치가 없다.

아, 그건 그냥 그런 감정을 그 사람이 느낀 것뿐이야. 그것은 피해가 아니야.

아, 나는 책임질 재간이 없다.

아, 그건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야.

라는 식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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