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거리 달기기

울트라 달리기

by 민경남

종아리에 큰 부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무릎이 잘 올라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런닝화 끌리는 소리는 슬리퍼 끄는 그것마냥 '질질'소리가 났다. 앞서 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내 뒤를 쫓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는 빈 화지에 먹물이 퍼지듯 맹꽁이가 검은 소리를 먹고 있었다. 온전한 풀잎의 냄새, ‘컹컹’ 짖어대는 시골개의 맹목적인 울부짖음, 낯선 마을을 간간히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의 파열음은 숲속의 반딧불이와는 구색이 맞지 않았지만 서먹한 이도시의 어둠을 밝혀주고 있었다.


모든 사물이 기억되기 시작한 것은 어둠이 물어날 시간이었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되는 시간에는 오롯이 투쟁이 더 필요했다. 투사가 되지 않는다면 내 몸은 산화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왼쪽 발등은 아무런 이유 없이 따끔따끔 아픔을 더했다. 용산교 밑 천변의 시궁창 냄새는 얼마나 역겹던지. 그곳에 시민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 라인을 그려놓고 유세라도 했을테니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필요 없이 밝은 청색의 네온사인은 이리저리 금간 늙은 다리를 힘없이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아 볼썽사나웠다. 천변의 포장길은 또 어떤가! 아픔이 많았던 광주를 대변하듯 바닥은 갈래갈래 찢어지고, 으깨어져 생채기만 남은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밤새도록 달리면서 느낀 광주의 모습은 그랬다.


나도 모르게 'xx~'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두 다리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어서 자연스럽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내가 본 광주직할시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몸처럼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종반전으로 치닫자 왜 이리 힘든 일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씩씩거렸다. 다른 선수들은 내리막을 그리도 잘 달리는데 나는 도무지 달릴 수가 없었다. 절름발이보다 못한 걸음으로 20여 km를 뛰어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끔찍할 뿐이었다. 땀을 연신 훔치면서 '다시는..., 내 다시는...'이라고 마라톤과는 담을 쌓으려고 했다. 나는 어느새 조바심과 완주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광주행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새마을 호는 KTX보다 더 고급스럽고 좌석도 푹신 푹신했다. 속도도 그것에 비해 느리지도 않았다. 차창 밖은 '태백산맥'에 나오는 봉우리와 마을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동적인 모습이라 눈을 시원하기만 하다. 아침을 슬프게 만들어 놓던 그 많은 빗물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열차가 쉼 없이 달릴수록 흐린 날씨를 비껴가기 시작했다. 광주는 짧은 출장을 제외하고는 가본 적이 없는 도시다. 차창 뒤로 물러나는 '강경, 함열, 익산' 도시이름도 그렇고, 서쪽 아래로 달려가는 건물들도 다소 생경스럽다. 낯선 곳의 방문은 늘 설렌다. 광주에 도착하니 비는 멈췄다. 간간히 먹구름이 몰려다녀 국지적으로 비가 쏟을 것 같았지만 습도만 높여 놓았을 뿐 대회 내내 비는 뿌리지 않았다.


출발장소인 광주시청 야외 음악당은 너무 큰 공간으로 인해 스타트 라인의 아치가 아주 초라하게 보였다. 저녁 6시, 출발함성과 함께 청사를 출발했다. 청사를 한 바퀴 돌아 40km까지는 여유 있고, 별로 힘들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11시간 안에 골인하겠다고 맘먹었다. 컨디션도 좋아 5km지점에서 치고 나갔다. 팔을 치면 저절로 발도 따라와서 앞서 간 선수들을 쉽게 따라 잡을 수 있었다. 20km가 넘어서자 내 뒤의 선수들 움직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25km지점부터는 혼자 달리는 것처럼 내 주변에 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어둠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로 진입하는지 가로등도 없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럴수록 밤꽃과 풀잎냄새는 무성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헤드렌턴을 차고 달리는 것이 불편해서 배낭에서 꺼내지도 않고 한참을 달렸다. 야간조명등을 든 자원봉사자가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5.18묘역 후문이었다. 광주묘역은 어둠을 휘감아서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앞서가는 사람 한명 없고 뒷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 묘역 안을 혼자 달리는 기분은 조금은 무시무시했다. 묘역이라 경건해야 하건만 어쩔 수 없이 경박스런 뜀박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50km까지 어떤 언덕도 걷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후반부에 탈이 될지 몰랐다. 그저 다른 선수들 보다 앞서 달리니 기분 좋을 뿐이다. 54km 체크 포인트에서는 쉬는 시간이 아까워 밥도 안 먹고 국물만 후루루 마신 채 출발을 서둘렀다. 그렇게 계속 달려 73km 고개에서 화채 두 그릇을 먹고 잠시 쉴 수 있었다. 내리막을 내려올 때부터 다리가 잘 움직여 주지 않았다. 다리 근육이 종아리에서 뭉쳐있는 듯했다. 왼쪽 발등은 왜 그리 아픈지... 다른 선수들은 내리막에서 그렇게 잘도 내려가는데, 나는 도저히 그런 속도로 내려갈 수 없었다.

이곡십리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자 좁은 주로가 시작되었다. 길은 산속으로 계속 이어져서, 마치 죽음의 길로 가는 것처럼 가로등도 없고 하늘도 나무그늘에 가려 어둠만 있을 뿐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곳이 너릿재 길이라는 것을 나중에 '코스설명 유인물'에서 알았지만 수리산 임도보다 숲이 우거진 이 길에 사람한명 보이지 않으니 공동묘지에 버려진 사람처럼 무섭기 짝이 없었다.


80km 정상에서 자원봉사하시는 두분에게 너릿재길이 왜 이리도 멀고, 어둡냐고 쓸데없이 투덜거렸다. 그래도 두분은 친철하게 국수를 말아주시면서 힘내라고 하신다. 국물을 먹고 내리막을 출발했다. 한분이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분의 내리막 속도를 따라 갈수 없었다. 내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내리막에서 많은 선수들에게 추월당하고, 평지에서도 속도가 붙지 않으면서 앞서 달리던 선수들에게 모두 앞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왜 멀리까지 와서 이리도 고생을 하는지, 마라톤을 왜 시작해서 고통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이제는 평지에서도 걸어야 했다. 천변으로 이어지는 무수히 긴 코스는 마지막 남은 파워젤을 까먹으면서도 도무지 힘을 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것은 92km 지점에서 아이스크림과 물을 마시고 '호흡은 충분히 되는데 왜 못 뛰는가? 적어도 12시간 내로 들어와야 되지 않은가? 하는 반문 때문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달리고,달려서 앞서 간 몇분을 추월하여 어렵게 천변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천변을 벗어나면 바로 시청이라 골인이 얼마 안 남았는지 알았는데 시청을 끼고 1.6km를 돌아야 한다고 한다. 뒤를 보니 내 바로 뒤에서 한 선수가 무서운 속도를 추격을 하기 시작했다. 내 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골인지점에서 추월당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이를 악물고 달려서 뒷 선수와 여유 있게 차이를 벌여놓고 힘겹게 골인했다. 11시간 49분 46초. 골인 테이프를 끊고 주최측에서 마련한 기념사진을 찍았다. 이제 다리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완주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울트라고 마라톤이고 다시는 안 하겠다고 맹세했는데, 비온 뒤의 무지개처럼 이번 대회가 내 가슴속에서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었다. 이것이 인생이라면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도 좋을 것 같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감내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힘겨움은 소중함과 추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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