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에세이
캄캄하고 조용한 밤과 아직 어둑어둑한 이른 오전에 재재가 깨어있을 때, 재재는 나와 남편에게 종알종알 재잘재잘 이야깃거리를 쉴 새 없이 던진다.
엄마, 오늘은 우리 뭐 해?
엄마, ‘옛날 옛날에’ 이야기 해주세요!
아빠, 오늘은 어디 가?
아빠, 지금 뭐하고 놀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가지 질문을 시작하면 그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는 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늘어놓는다. 어두운 시간에 우리는 그렇게 목소리와 눈빛과 몸짓을, 이 모든 것을 담은 애정을 주고받는다.
한 번은 겨울의 한 주말 이른 아침에 재재가 일어나 침대에서 나와 함께 밍기적대다가 나에게 질문을 하기에 재재에게 답변을 해주었다.
재재: 엄마, 오늘은 우리 뭐 하고 놀아?
나: 오늘 승미이모, 만두형아, 로연이누나, 재원이삼촌 만날 거야.
재재: 승미이모, 만두형아, 로연이누나...
재재가 말하는 중에 갑자기 어두운 배경 속 어딘가에서 낯선 소리가 들린다. 안방 화장실 쪽에서 나는 소리 같다.
우당탕 두당탕!
어두움을 더 어둡고 무섭게 만드는 정체 모를 소리에 재재는 갑자기 자리가 있던 침대자리에서 눈을 크게 뜨고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나에게 재빠르게 안긴다. 상상하는 인지력이 날로 자라면서 재재는 어두움과 두려움을 조금 더 생생하고 크게 느낄 수도 있게 된 것 같다. 재재는 혹여나 어두움 속 소리를 낸 주체가 알아들을까 싶은지 실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재재: 엄마, 이게 무슨 소리야?
나: 재재야, 깜짝 놀랐지? 엄마도 놀랐어. 아마 위층에서 누가 문을 닫았나봐. 아니면 바람이 슈웅 불어서 문이 쾅 닫히느라 소리가 크게 났나봐.
재재: 엄마도 놀랐어?
나: 응. 소리가 커서 엄마도 깜짝 놀랐어.
재재: 응~ 위층에서~ 바람이~ 문을 캉! 닫았나봐? 그래서 소리가 크게 났나봐? (재재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내가 한 말을 따라하는 듯하다.)
나: 응, 그랬나봐.
재재: 엄마, 무서워. 안아줘. (무서우니 안아달라고 잘 표현하는 것에 조용히 기특함을 느낀다.)
나: 재재야, 문이 쾅 닫히는 소리는 크지만 그렇다고 무서운 건 아니야.
재재: 무서운 거 아니야?
나: 응 그럼! 재재 옆에 엄마가 있잖아. 그리고 윤재 마음에도 엄마가 있고, 아빠도 있고, 하나님도 있고, 재재가 좋아하는 경찰차도 있잖아.
재재: (자기 가슴에 손을 대며) 하나님도 있고... 어... 승미이모도 있고... (재재 가슴에 승미이모도 있었나? 이쯤부터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지는 걸 느낀다.) 만두형아... 로연이누나... 같이 만나! 엄마, 우리 오늘 승미이모 만나지이~~~
나: (나는 깔깔 웃으며 재재를 꼭 껴안는다.) 아우 내 새끼 사랑스러워! 그 말 하면서 이미 무서운 건 다 잊어버렸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 나누다가 그 이야기에 나온 이웃의 이름들을 무서운 순간에 떠올리다니. 재재의 천진함과 순수함, 그리고 아직은 미숙하지만 머릿속에 저장해둔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재재의 기억과 표현에 나는 그만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다.
무서울 때 엄마의 포옹과 쓰다듬과 안심이 되는 말을 거쳐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 무서움을 조금씩 다스릴 수 있는 재재만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무서울 땐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의지하고 싶은 사람, 각 사람과의 추억을 떠올려봐야겠다. 재재의 방법, 꽤 요긴할 것 같다.
재재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항상 보고 싶은 사람(‘항상 보고 싶은 사람’의 목록에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람의 이름도 올라오겠지?).
역시, 무서울 때 옆에 엄마가 있으니 안도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떠오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군. 이렇게 재재 엄마는 혼자 행복한 착각 속에 빠지는군.
나: 재재야, 오늘 승미이모랑 만두형아랑 로연이누나랑 재원이삼촌이랑 뭐 하고 놀까?
재재: (진지하게 고민한다.) 음... 도둑 잡기!
나: 그래! 오늘 도둑 잡기 하자! 일어나서 옷 갈아입을까?
재재: 응!
무서운 거 다 잊었다. 재재의 방법, 효과 있다!
*재재에게 남기는 메모.
재재야, 살면서 두려워도 꼭 바라봐야 하는 것(이를 테면 ‘내가 누구인가’ 하며 나를 제대로 바라봐야 할 때 무서울 수 있거든.) 빼고는, 단순히 어두울 때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막연하고 낯선 소리 때문에 무서울 때는 그것에 이름과 재재만의 설명을 붙여봐. 툭- 소리가 나면 “아, 위층 형아가 밤늦게 들어와서 가방을 툭- 내려놨나보다.” 하고. 드르륵- 소리가 나면 “아, 아래층 이모가 더워서 창문을 드르륵- 열었나보다.” 이렇게. 그러고 재재의 방법대로 “난 이번 주에 누굴 만나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생각해보자.” 이 순서로 가면 재재의 마음에서 무서움이 스르륵 빠져나가고 재재 마음은 좀 더 가벼워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