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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넉넉 Jul 21. 2022

우리 집 꼬마 언어술사

목요일 에세이

어느 한가로운 주말, 재재가 낮잠을 자는 중에 초인종이 집 전체에 울려 퍼졌다.

“띠이잉도오옹-!”

치킨 도착한 것이다.   

   

재재가 낮잠을 한 시간 반 정도 잤을 때쯤 도착하도록 예약을 해두었다. 충분히 낮잠을 자야 가벼운 몸과 맑은 정신으로 오후 시간을 신나고 알차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증명이라도 하듯 재재는 초인종 소리가 들린 후 다른 때보다 몸을 더 빨리 일으켜 눈을 마구 비빈다. 조금 몽롱해하더니 바로 명랑한 목소리.


엄마 방금 누구였어?!
택배 아저씨야.


바로 눈이 땡-글해지는 재재.     

 

엄마! 택배 아저씨가 재재랑 콩콩이(아가 인형인데 정말 자기 여동생으로 여긴다) 거 선물 가져왔나 보다!     



그러고는 침실에서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 나간다. 내가 치킨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재재. 그런 재재를 보며 나와 남편은 껄껄 웃어댔다. 재재가 보여준  모습에서 나는 재재의 새로운 보물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자기 욕구를 이렇게 완벽한 문법과 명확한 문장을 사용해서 말할 줄 알다니!     


세 돌을 향해가는 재재의 언어 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재재의 뇌 속에서는 언어력을 담당하는 뉴런이 폭발적으로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꼬마 언어술사가 만들어내는 문장들.

사랑이 만져지는 듯한 표현들.

재재의 말과 목소리와 몸짓이 한데 어우러져 엄마와 아빠에게서 연신 감탄사를 자아낸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우리 아들.     


우리의 감탄사는 이내 재재의 탄식에 묻힌다.     


에이, 치킨이었네.

(재재는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       

   

*


재재에게 남기는 메모

재재야, 엄마랑 아빠는 치킨을 좋아해. 가끔 시켜먹는 치킨이 참 맛있거든.

몇 달 후엔, 몇 년 후엔 재재도 치킨을 좋아할까나? 그래서 어느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 띠이잉도오옹- 하고 초인종이 울리면 그땐 우리 꼬마 언어술사가 이렇게 말하려나?


“엄마, 아빠! 택배 아저씨가 치킨 배달해 주셨나 봐! 엄마랑 아빠랑 재재를 위한 음식 선물인가 봐!... 와우, 정말 치킨이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재재야.     


재재야, 사람들이 간혹 그래.

욕구, 욕심, 욕망은 마음속에만 두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게 좋다고. 너무 유별나지 않는 게 좋다고. 미숙한 사람이 이런 감정에 휩싸인다고도 하거든? 그렇지만 가벼운 욕구부터 무거운 욕망까지 잘 느끼고 마음껏 표현해보는 게 필요해. 그러고 나면 욕구와 욕심과 욕망을 잘 달래주고 채워주기 위해서 어떤 건강하고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거든. 또 어떤 행동은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지도 평가해볼 수 있어. 다만 욕구, 욕심, 욕망을 표현할 때는 재재 홀로 조용한 시간에 하나하나 들여다보거나 재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달래거나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훨씬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엄마랑 아빠가 오래오래 재재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기를 기도해. 엄마랑 아빠부터 욕구, 욕심, 욕망을 진솔하게 차분하게 이야기해보고 채우고 엄마, 아빠 스스로 만족하는 연습을 꾸준히 할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재재와도 우리의 욕구, 욕심, 욕망에 대해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곧 오겠지.


지금은 엄마, 아빠가 매일 재재가 보여주는 욕구 표현 방식을 재재의 스타일이자 보물로 받아들이고 재재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할게. 고마워,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보물을 주는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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