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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넉넉 Sep 23. 2022

밥 요술쟁이

목요일 에세이

재재는 아침에 일어나면 적어도 10분 정도는 내 품에서 온갖 스킨십을 한다. 나에게 안긴 채로 어깨에, 가슴에, 팔에, 팔뚝에, 배에, 배꼽에 자기 입술과 얼굴을 부빈다. 나도 재재에게 뽀뽀 세례를 하고, 재재가 잠이 깨도록 웃긴 소리를 내면 재재는 조금씩 잠결에서 깨어나 스트레칭으로 함께 하루의 시작한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아니 모르겠어서, 나는 매일 아침 재재와의 ‘부비부비’ 시간을 누린다. 지금, 여기, 재재가 내 품에 있다, 하고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느끼려 한다. 그러면 세상의 행복은 나의 것이다.     


재재는 점차 잠에서 깨고 또렷한 눈빛을 찾는다. 그러면 내 품에서 스르르 빠져나가 재재의 집중을 빼앗는 ‘그날의 장난감’으로 간다. 나는 흐뭇하게 재재를 바라본다. 그러고 있으면 보통은 아침식사 준비를 대충 마친 남편이 거실 소파로 와 내 옆에 앉는다. 그날은 씻고 바로 내쪽으로 와서 말했다.     


남편: 오늘, 맛있는 거 먹을까? 
나: 오늘은 음식준비하기 싫은 날?


남편: (너털웃음) 어. 
나: (같이 웃는다.) 그래, 일찍 준비하고 나가서 재재 좋아하는 햄버거 사 먹자. 배고프다.     


나와 남편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재재가 뽀로로 경찰차 장난감을 품에 든 채 다가와 우리 사이를 비집고 가운데 앉는다.      


재재: 엄마, 아빠 배고파? 
우리: 응. 
재재: 내가 맛있는 요리 해줄까? 
우리: 맛있는 거? 재재가 무슨 요리 해줄 건데?     


재재는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튀어나가’ 부엌으로 간다. 전기밥솥 버튼을 능숙하게 누르고 뚜껑을 열어 본다. 한참 밥솥 안을 바라보더니 후다닥 우리에게 뛰어온다.


재재: 엄마! 아빠! 내가 요리해떠! 밥통에다가 밥해떠! 저기! 
우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재재의 능청스러움과 사랑스러움에 그저 웃는다. 재재는 바로 남편의 손을 잡고 끌고 간다. 밥솥 안을 보여준다. 



재재: 아빠, 봐봐. 여기 밥 있지?
남편: 응. 이거 재재가 한 거야?
재재: (턱을 살짝 올리고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생색내듯) 응, 내가 했지! 아빠 밥 먹어.  
남편: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이야, 진짜 맛있겠다. 재재가 밥을 뚝딱 했네?! 

    

‘내가 한 밥을 기꺼이 내어줄 테니 아빠는 먹기만 하라’는 눈을 하며 관대하고 너그러운 사람 흉내(어쩌면 재재 입장에서는 흉내라기보다 진심이었을 것이다)를 내는 재재. 으앗, 이 넘치는 사랑스러움을 어쩌면 좋을까!     


지금, 우리는 ‘밥 요술쟁이’ 재재를 보고 있다. 행복이 별건가. 계속 이 ‘사랑 요술쟁이’ 재재를 보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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