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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넉넉 Jun 03. 2022

이야기꾼 아빠와 웃음꾼 재재

목요일 에세이

“아빠,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

“아빠,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

“아빠, 신나는 이야기 해주세요.”



내가 기억을 잘 하는 편이라서, 상상 속에 자주 빠져서 기억과 상상한 내용을 글로 적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우리 집에서 진정한 이야기꾼은 남편이다. 잠 들기 전,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각색해 빠릿빠릿한 토끼를 나로,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거북이를 남편(좋은 건 꼭 자기가 하고 싶은 법)으로 탈바꿈시킨 이야기를 재재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재재야, 엄마는 방귀를 되게 잘 뀌는데, 그 방귀 냄새를 맡으면 ...”

"옛날 옛날에, 발가락 냄새를 잘 맡던 소녀가 있었어요. ..."

"아기 상어랑 아빠 상어랑 쇼핑을 갔는데, 아기 상어가 맛있게 생긴 물고기 초콜릿을 보고 ..."

   

재재의 흥미를 단번에 끄는 말로 시작해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지 몰라 재재보다 오히려 내가 더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때도 많다.   


남편은 이야기를 하다가 재재에게 “재재야, 그 다음에 어떻게 됐게?” 질문을 하면 재재가 뚱딴지 같지만 귀여운 반응으로 받아쳐 모두의 웃음소리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중간으로 가기도 전에 재재가 이야기와 전혀 관련 없는 엉뚱한 말을 해대는 통에 남편과 나는 그 어떤 재미난 이야기보다 더 웃겨서 푸하핫-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를 테면, 남편이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토끼가...” 하는 지점에서 재재가 “뱀파이어가 됐어! 으아아아~~~” 하고 괴물소리를 낸다거나, 갑자기 “이제 엄마한테 가서 잘래.” 하고 아빠 품에서 나와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거나 하는 식이다. 재재의 뜬금 포에 우리는 무력하게 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뜬금 포를 다른 말로 하면 ‘재재만의 사랑스러움’, ‘재재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재치가 넘치는 아빠를 닮았나 보다.


그렇게 즐거운 밤시간을 선사해주는 남편과 재재에게 늘 고맙다. 전혀 관련 없는 주제를 넘나들며 아빠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재재는 어느 순간 길게 하품을 한다. 그러다 재재는 자기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 곁으로 와 졸린 몸을 누인다. 내 곁에서도 재재는 한동안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난 후 하품을 두 세 번 하면 그제야 잠에 든다. 나는 잠이 든 재재의 이마에, 볼에 뽀뽀 쪽, 하고 큰 침대로 돌아가 남편을 본다. 남편은 머리가 베게에 닿으면 잠이 드는 신기한 존재. 뺨 한 번, 머리 한 번, 쓰다듬고 남편 옆에 누워서 눈을 감는다. 그러면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하루의 마무리도 사랑스럽다. 내 가족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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