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2
아빠와 함께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던 때가 생각난다.
흰 천으로 감싼 아빠의 시신이 누워있는 일인용 침대, 나, 직원, 이렇게 셋만 탔는데도
엘리베이터 안은 비좁았다. 침대 옆에 멍하게 서있는데 벨소리가 들렸다. 장례지도사였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화장터를 어디로 정할지 물었다.
“네? 화장터요?”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가 다시 설명했다.
아, 화장터도 알아봤어야 하는 거였구나.
그런데 아빠가 방금 죽어서요, 그래서 거기까진 생각 못했는데요.
삼 일 전까지만 해도 아빠가 이렇게 빨리 죽을 줄 상상도 못 했는데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으니 생각을 해야 할 텐데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서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옆에 서있던 장례식장 직원이 입을 열었다.
“화장터부터 예약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요즘 일이 늘어서 금세 마감되거든요. 그럼 장례식 끝나고 바로 화장터로 못 갈 수도 있어요.”
그렇구나.
화장터 예약현황은 모바일로도 실시간 확인이 가능했다. 발인 당일 마지막 시간 딱 하나가 비어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지는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부터 알아보았다.
아빠가 정말 죽는다고? 저렇게 멀쩡한데? 믿기지 않아 손을 덜덜덜 떨면서 휴대폰으로 가까운 경기도 추모공원을 훑었다. 대동소이해서 고르기가 더 어려웠다.
건물 실내에 들어가면 다양한 방이 있는데 이를 ‘봉안(받들 봉에 편안할 안을 쓴다) 실’이라고 부른다. 각 봉안실에는 봉안단 여러 개가 줄 서 있다. 봉안실은 도서관 자료실, 봉안단은 자료실 안에 배치되어 있는 책장을 떠올리면 된다. 봉안단은 책장처럼 여러 단으로 나뉘어 있다. 아파트의 로열층처럼 봉안단에도 단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는 인간의 눈높이와 관련이 있었다.
성인이 똑바로 서서 정면을 보았을 때 대략 눈높이에 해당하는 단이 제일 비쌌고, 해당 단의 위아래 줄이 그다음, 발판 위에 올라서거나, 쪼그리고 앉아야 보이는 최상위, 최하위 단이 제일 저렴했다.
땅이 좁으니까 별 걸 다 돈이 좌지우지하는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와중에 외삼촌 한 분이 지나가듯 말씀하시는 게 귀에 들어왔다. 서울의 여러 구가 충북 음성과 계약을 맺어 그곳의 추모공원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찾아보니 여러 가지 자격조건 중 한 가지에만 부합해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추모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빠가 며칠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22일, 아빠가 마지막으로 숨 쉬는 모습을 지켜본 게 25일, 아빠의 이름이 새겨진 봉안함을 추모공원에 두고 온 게 28일. 이 모든 일들이 일주일 안에 일어났다 끝났다.
고인의 사망시점으로부터 삼일 안에 모든 장례절차가 끝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시간이 좀 걸렸다. 고모부의 부고를 듣고, 최대한 빨리 비행기를 타더라도 고모부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왠 걸. 뭐라고요? 거의 한 달 뒤에 장례를 치른다고요? 이게 무슨 소리지?
고모부가 살고 계신 지역 담당 장의사의 스케줄이 꽉 차서 앞서 예약된 작업을 끝내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낸시는 그동안 고모부의 시신은 시체안치소에 보관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아빠가 고모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고모부 장례식이 어땠는지 아빠한테 제대로 듣지도 못했네.
앞으로도 못 듣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