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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엘라 Oct 22. 2024

중개보수가 아니라 정(情)입니다

1천만 원의 용도

  첫 매매계약과 매수신청대리가 무보수로 끝나고 한 달쯤 지나서였다. 한 중년남자가 사무소에 방문했다. 남자는 시내중심에 위치한 토지의 지번을 알려주며 시세를 물었다. 

  나는 간단한 정보와 함께 시세를 말해주었다. 남자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서 어떤 노신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남자는 노신사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노신사는 남자가 물어보았던 토지에 대 자세한 정보를 듣고 싶다고 했다. 주변의 다른 토지의 시세도 물었다. 내가 준 명함을 보면서 중개사가 된 지 얼마나 되는지, 경기가 안 좋은데 계약은 얼마나 했는지도 물었다. 그렇게 1시간쯤 이야기를 나눈 후, 가지온 서류를 나에게 건넸다.


  서류 안에는 토지를 매도할 경우 위임에 필요한 서류와 인감도장 등이 들어 있었다. 매매가는 내가 말한 시세보다 훨씬 낮게 책정해서 팔아달라고 했다. 그 이상 보너스로 주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급매물을 의뢰하면서 그런 제시를 하는 고객이 많았다. 소위 인정작업이라고 하는 ‘순가중개계약’이 그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계약이다. 합‧불법을 떠나 고객의 급한 사정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재산상의 손실을 감수할 정도로 급한 사람이라면 도와야 할 대상이지 이익을 취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개보수를 초과 수령하는 것은 불법이고 말하며 웃, 노신사는 주는 사람 마음이라고 하면서 더 크게 웃었다.

 

  노신사가 의뢰한 토지는 기간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매매가도 시세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첫 매매계약과 첫 매수신청 대리는 무보수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취소되지도 빼앗기지도 않을 것 같았다.


  잔금일에 노신사가 봉투를 건넸다. 중개보수는 이미 계좌이체가 된 상태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단호히 거절했다. 한동안 ‘받아라, 못 받는다.’를 반복하던 중 노신사가 말했다.   

  “내가 왜 중개사님한테 매도를 부탁한 줄 아세요?”


  노신사가 하소연을 하듯 말했다. 경기침체로 사업이 악화되어 아쉽지만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우리 사무소에 들렀던 날은 오랫동안 거래하던 중개사무소에 갔다가 돌아가던 길이라고 했다.

  “내가 시세를 어느 정도는 아는데 사정이 급하다니까 가격을 터무니없이 불러요. 혹시 내가 시세를 제대로 모르는가 싶어 물어보려고 들렀다가 중개사님을 만났어요. 고마워서 드리는 거니까 받아주세요.”

 

  노신사는 다른 여러 건의 부동산에 대한 매도를 위임하고 돌아갔다. 거절했던 봉투가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는 것은 노신사 통하면서 알았다. 봉투 안에는 1천만 원 권 수표 한 장과 메모지가 들어있었다.

  ‘중개사님을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 이건 중개보수가 아니라 정(情)이니 받아주세요.’


  그 후, 노신사가 위임한 부동산들을 계약하면서 첫 계약과 입찰의 무보수를 몇 번이고 상쇄하고도 남을 중개보수가 들어왔다. 그러한 계약로 연결된 고객은 또다른 고객을 불렀고, 외딴 사무소를 찾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었다. 부동산시장에는 한파가 몰아쳐도 우리 사무소에는 불경기가 없었다. 심양면 쏟아지는 축복과 함께 기적이 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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