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느리게는 살 수 없을까?

살아감의 지혜(아프리카 사막에도 석양이)

by 바람마냥

더디게 살아보고자 생각했다면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더구나 시골살이를 하려고 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살고,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내가 서두른다고 될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던 첫해, 옆집 아주머니가 건네주신 콩을 심어놓고 싹이 나오지 않는다고 타박을 한 적이 있다. 왜 옆집이 콩은 싹이 나오는데 우리 콩은 나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들여다봐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어느 날 싹이 돋아나 오고, 연달아 모든 싹이 삐죽이 얼굴을 내밀었다.


올봄에는 씨 더덕을 사다 뒤 언덕에 심어 놓았다. 약간은 경사진 곳이기에 심기도 힘들지만 평소에 풀을 뽑아주기도 쉽지는 않은 곳이다. 하지만 더덕의 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봤다. 하지만 몇 개의 싹이 나오더니 심은 것의 절반도 나오지 않은 듯했다.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더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풀만 무성해졌다. 이제 나올 더덕 싹을 포기하고 나온 더덕만 정성스레 돌보며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다시 주변에 풀을 뽑아주기 위해 언덕을 올라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기다렸던 더덕이 수북이 싹이 나와 줄기를 키워놨던 것이다. 그동안 망설이던 더덕들이 많은 새싹을 밀어낸 것이 아닌가?


마당 끝에 심었던 콩이 그랬고, 뒤 언덕에 심었던 더덕이 그랬듯이 정성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주어저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마음만 바쁘다고 아무리 서둘러 봐야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뜻 이리라.

황금 낮 달맞이 꽃, 때가 돼야 빛이 난다.

하지만, 일상의 생활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두, 때가 되어야 한다고 느긋하게 기다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우리는 너무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에 따라가기가 너무나 버겁다. 젊은이들이야 쉽게 해결이 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가 너무나 힘겹다. 아파트를 찾아도 그것이 그것 같기도 하고, 주차장을 나서면서 만나는 갖가지 방법으로의 요금정산은 힘들기만 하다. 언젠가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부딪쳤던 현상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는 곳마다 주차장 시설 이용방법이 다양하고, 주유 방법이 다 달라 당황스러었던 그 경험 말이다.


그렇게 변하는 사회에서 바쁘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수단일 것이다. 하지만 바늘을 허리 매어 쓸 수 없듯이 모든 것은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콩은 싹이 나올 준비가 되어야 나올 수 있고, 더덕은 뿌리를 내리며 싹을 틔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콩이 빨리 나와야 하고, 더덕이 서둘러 잎을 피워야 하는 것은 나만의 방법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법일 뿐이었다.

뒤울의 더덕도 싹을 키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빨리 문이 닫히길 바라며 힘껏 닫힘 버튼을 얼른 누르고 만다. 그래도 닫히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누름단추를 힘껏 누른다고 금방 닫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추를 눌렀더라도 그것이 준비하고 닫히는 시간이 있을 터이니 굳이 있는 힘을 다하여 누를 필요는 없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싹이 나오는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있어야 하고, 얼마간의 물과 햇살이 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이다.


급박하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빨리 적응해서 편안하게 살아가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진행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나만 혼자 서두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기다림과 배려가 있어야 이 사회도 원만히 돌아가고, 삶의 과정도 여유가 흘러넘친다. 콩은 뿌리가 내리고, 햇살이 밝게 비추어 주어야 열매를 맺고 영글어 가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닫힘 버튼을 얼른 누를 것이 아니라 혹시, 누가 급히 뛰어오는 이웃을 없나 살피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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