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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18. 2023

눈 내리는 저녁, 마음이 미끄럽다.

(눈 내리는 저녁)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 김장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아이들과 한데 어울리며 가을을 마감하는 김장 전야제 날이다. 부산에서 딸아이가 찾아오는 저녁,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려온다. 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머뭇거리며 내리는 눈이 아름답다. 부산에 살며 눈구경을 할 수 없는 손녀는 벌써 신이 났다. 도착도 하기 전에 눈밭에서 뛰어놀 생각인가 보다.


오래전, 히말라야의 오지 부탄을 찾았었다. 오로지 자기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나라다. 왜 첫눈이 오면 공휴일인지 궁금해 찾아 간 나라다. 오늘에야 왜 첫눈이 오면 공휴일인지 알게 되었다. 첫눈이 오면 마음이 들떠 일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하루를 쉬는 편이 훨씬 좋고도 낭만적이란다. 부탄에 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오늘에야 알게 됨은 삶이 각박해서인가 보다.

아이들과 어울려 하는 김장은 늘 망설이는 행사다. 아내가 어려워하는 세월이 되어서다. 할까 말까를 망설이다 올해도 해보기로 했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김장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어우러지는 주요 행사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아름다운 눈이 내리는 저녁, 아이들은 잘 오고 있을까? 오래전 내 어머니 걱정을 하고 있는 저녁이다.


아내는 아침부터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김장준비를 해야 했고, 방앗간에 들러 참기름을 짜야했다. 아이들에게 갖가지 챙겨줄 것을 찾아내고 있다. 꼭, 오늘 해야 되느냐는 말에 대답이 없다. 얼마 되지 않는 논을 대신 농사짓는 사람한테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김장을 하러 오는데 햅쌀이 있느냐고. 어렵게 부탁해 햅쌀 받아 놓은 사람이 묻는 말이다. 쌀을 찧어 놓고, 참기름을 짜야했다. 내 어머니의 할 일을 하고 있는 저녁이다. 


내일은 김장을 해야 하는 날,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산마루에 내리는 눈은 한없이 아름다운데 오고 있는 아이들이 더 걱정인 것은 내 어머니의 걱정거리였다. 드디어 아이들이 도착했다. 싱싱한 횟감을 들고, 아비를 찾아 수백 킬로를 찾아왔다. 일 때문에 내일 오는 아들내외만 오면 되는데, 눈이 많이 내려 걱정이다. 올 아이들이 왔으니 어제야 한숨을 놓는다. 이제야 아름다운 눈을 보며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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