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허무한 순간은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나를 스쳐 지나갈 때.
저녁 6시도 되지 않은 늦은 오후, 창문 밖 세상이 어둠으로 캄캄해지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 왔구나' 실감했다.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면 저녁 7시든 8시든 언제든 밝음이 아직 남아있는 밖이라 고민 없이 나가곤 했는데, 이제는 외출할 때 텀블러를 챙겨나가 저녁에 먹고 싶어질 커피를 미리 사서 집으로 온다.
나의 생활리듬은 겨울에 맞춰 자연스레 전환되어갔다.
저녁 6시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내가 내린 버스 정류장은 바로 옆에 지하철 역도 있어서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한 곳을 응시하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 노선표를 유심히 보고 있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환승하려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아마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라 짐작했다.
찬찬한 걸음과 목적 없는 시선으로 무리를 벗어나 집 방향으로 몇 발자국 걸어가고 있었다.
'다다다 다다다다'
바쁜 발자국 소리에 시선이 닿았다. 대학생 또는 사회초년생으로 보이는 20대 중후반의 여자애가 나를 향해, 정확하게 말하자면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고개까지 돌려가며 끝까지 그녀를 향했고, 그녀는 재빠르게 뛰어서 버스에 올라타며 마침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행이다. 뛴 보람이 있어서...'
그렇게 일면식 없는 그녀의 무사 탑승을 흐뭇해하며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문득 저 나이대의 내가 생각났다.
나도 그랬었다. 저절로 뛰어지곤 했었다.
신호 걸려 대기 중인 버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전력 질주하여 정류장으로 뛰어가곤 했었고, 곧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역내 안내 방송이 들리면 어느 방향이던 상관없이 일단 뛰고 보았었다.
그때는 시간에 쫓겼거나, 얼른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었다.
지금은 시간에 쫓길 일이 잘 없다. 무소속이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어질 만큼의 피로감도 없는 요즘이다. 하기 싫은 일은 하고 있지 않으니까.
내 하루의 일정을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하고, 설령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 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
큰일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회사를 그만두었으니까.
그렇지만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 이랬던가?
바쁘게 어딘가로 뛰어가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