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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력한, 그렇게 다가오는 무력감.
가끔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질 때가 있습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혹은 일상의 대화에서는 나누기 조금 어려운 그런 '나만의' 공상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오 그럴듯한 이야기네?' 라고 긍정적인 반응이 올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래?' 라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 대답이 상당히 부정적이라면 적잖이 당황을 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나만의' 공상들은 정리되지 않은 단어와 문장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직은.
어쩌면, 이를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하니 미래의 언젠가 무언가를 묘사하기에, 표현하기에 제가 좀 더 그 능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다면(혹은 그런 상태에 있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할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정리되지 않은 상상이 아닐 테니까요, 적절한 단어와 그 호흡으로 어딘가에 남겨졌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이런 무력감(공상을 적절한 현실로 변환하지 못하는)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현의 영역이지 제가 느낀 그 실감은 너무나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알고 있어요. 다만 적당한 단어와 호흡을 통해 표현을 못하는 것뿐이라는 것을요.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한여름의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건 그 자체로 여름인 것이지 굳이 '뜨겁다', '빛난다' 등의 단어로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 그 색감 앞에서, 노을처럼.
그런 무력감과 함께 찾아오는 공상에서 또 다른 내용의 단편소설을 떠올립니다. 정확하게는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게 처음으로 쓴 단편소설과 같이 '색감'이 주제가 될 것도 같지만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안에는 지금은 무력하게 다가오는 그런 공상으로써의 색감이 담겨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우두커니 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때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내가 보고 있는 저 사물의 모양과 색감 그리고 크기가 다른 사람의 눈에도 전부 동일하게 보일까?"
멍청한 생각인 건 당연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국제적인 표준에 맞춰 측정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양과 색감 그리고 그 크기는 수치화된 결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이는 오해의 소지 없이 깔끔하게 해결이 되겠죠. 다르게 보면 의미가 없는 질문입니다.
근데, 그런 반항심도 같이 듭니다.
"아니, 나한테는 적어도 저 건물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는 거잖아. 더 밝아 보일 수도 있는 거고. 안 그래?" 라는 상대적인 관점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일단 우리는 전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무력한 공상은 그렇게 출발을 합니다.
수치화된 혹은 정량화된 기준을 넘어서는 개개인의 변칙이 존재하는 것.
흔히 곡선은 신의 작품, 직선은 인간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곡선으로 되어있고 오히려 직선은 자연에 반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낸 직선 또한 무한히 확대를 해보면 무한히 많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색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런 상대적인 관점에서 절대적인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그런 공상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저녁 퇴근을 하고 선릉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에, 무심코 뒤를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테헤란로의 수많은 자동차 위로 떠오른 노을의 그 색감이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강렬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붉은 구름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걸어가던 후배에게 물어봤어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아. 완전 주황색이야."
하지만 후배는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뭔가, 해가 저무는 그런 보라색 같은데요."
주황색과 보라색, 그 색감 앞에서 무력한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수많은 자동차를 비추며 지구의 반대편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그 노을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