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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n 27. 2024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6월 27일 모닝 페이지

한국에 오는 일정이 확정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미용실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은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겨우 예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늘 손님들로 붐볐다.


교통도 불편하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도 따로 하지 않지만 언제나 예약이 꽉 차있는 그 미용실의 비결은 딱 하나. 머리를 잘한다는 것이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대충 말해주면 내 얼굴형과 머리 상태에 맞춰서 알아서 척척 머리를 자르고 펌을 말았다.


그렇게 완성된 머리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없어서 결국 몇 년째 이 미용실에 다니는 중이다.


이번에도 역시나 입국 일정에 맞춰 미리 예약을 하는 내게 미용실 예약과 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작은 원장님이 말했다.


“저희가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여행을 가는데 말씀하신 날짜는 예약가능합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 달 이상이나 문을 닫고 여행을 간다니. 남들이 들으면 제정신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 미용실은 그래도 괜찮다. 나와 같은 충성 고객들이 이미 많이 있을 테니.


실제로 그 미용실이 이렇게 한 달 이상 가게 문을 닫고 여행을 가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작년엔 아버지를 모시고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을 가느라 문을 닫았고 재작년에는 원장님 두 분이서 순례자의 길을 걷느라 또 문을 닫았다.


그렇게 매년 한 달 이상 가게 문을 닫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데에는 그 정도로 쉬고 돌아와도 고객이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자신감에는 수년간 쌓아온 고객과의 신뢰관계가 있을 것이고 그 신뢰 관계는 언제 가도 최고의 만족도를 선사하는 원장님의 미용 실력에 기반할 것이다.


이 세상에 미용실은 많지만 이만큼 내 머리를 잘 알고 잘 만져주는 곳은 없다는 확신이 나를 비롯한 그 미용실의 고객들 사이에는 이미 뿌리 깊게 내려앉아 있을 테니까.


언젠가 알고 지내던 편집자로부터 아직 원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출간 계약부터 했다는 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첫 책을 출간하고 다음 책으로 준비 중이던 원고를 여기저기 투고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원고도 없이 계약먼저 했다는 그 작가의 이야기는 그저 부럽고 또 부럽기만 했다.


원고도 받지 않고 계약서부터 들이민 그 출판사는 어떻게 해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마 내가 몇 년째 같은 미용실을 고수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 사람이 아니면 그 책을 만들 수 없다는 확신. 혹은 이 사람이 쓴 원고라면 어떤 책이라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출판사로 하여금 작가에게 원고를 받기도 전에 계약서를 먼저 들이밀게 만든 것이 아닐까?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우선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실력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그렇다면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역시 시행착오다.


엄두가 안 난다고 지레 겁먹지 말고, 못할 것 같다고 도망부터 치지 말고, 되든 안 되든 일단 시도하고 부딪히고 깨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게는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얼마 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절대로 못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쓰고 싶다, 못 쓰겠다, 쓰고 싶다, 못 쓰겠다를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결국 나는 또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제는 정말로 소설을 쓰고 싶다. 이래서 못 쓰고 저래서 어럽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하자. 그럴 시간에 몇 줄이라도 소설을 쓰는 게 더 낫다.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이렇게 글로 또 쓴다. 더 이상 똑같은 핑계를 대며 또다시 소설 쓰기를 포기할 미래의 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제 갓 돌 지난 아기를 키우며 소설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불가능한 일인 것도 아니다.


시간이야 좀 더 걸리겠지만 그럼 뭐 어떤가. 어차피 계약서 먼저 들이미는 출판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행착오도 경험도 아닌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믿어주고 싶다. 얼마가 걸리든 결국엔 소설 한 편을 다 써낼 미래의 나를 믿고 오늘과 내일과 그다음 날을 살고 싶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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