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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Sep 12. 2022

이상한 소리  上

나쓰메 소세키

*소리를 제재로 生과 死의 対比를 절묘하게 그려낸 夏目漱石「変な音」를 번역

*이 글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번역한 글로 연구 목적으로 쓰지는 마세요



꾸벅꾸벅 졸았나 싶더니 눈이 떠졌다.

그러자 옆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또 어디서 나는 건지 짐작이 안 갔지만,

듣고 있노라니 점차 귓속에서 정리된 관념이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강판으로 무 같은 것을 조심조심

바스락바스락 갈고 있는 게 틀림없다

분명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시간에 어디에 쓰려고

옆방에서 다이콘 오로시*(大根おろし무를 간 것)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 상상도 못 하겠다.


말하는 걸 잊었는데  여기는 병원이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한 50미터*(半町,1町가 약 109미터)쯤 떨어진

두 층 아래 부엌에 있다.


병실에서는 조리는 물론 과자도 금지다.


하물며 이런 시간에 무엇을 하려고 무를 갈겠는가.


이건 분명히,

다른 소리가


내게는 무 가는 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마음속으로는 깨달았지만,


자 어디서 왜 이런 소리가 나는 가라고 하면

역시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대로 놓아두고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머리를 쓰려고 해 보았다.


하지만 일단 귀에 들어온, 이 묘한 소리는

그것이 계속 내 고막에 호소하고 있는 한

묘하게 신경이 거슬려서

아무리 해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 건물에 불편한 몸을 의탁한 환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있다


자고 있는 건 지,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복도를 걷는

간호사들의 슬리퍼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 가운데 이 쓱쓱 하고 무언가를 갈아대는 듯한 이상한 울림만이 신경이 쓰였다.



내방은 원래 특실로 두 칸이 이어져 있던 것을

병원 형편 때문에 하나씩  나눈 거라


화로 등을 놓아둔 옆방 쪽은 벽 하나가 다른 옆방과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이부자리가 깔려 있는 6첩 방에는

동쪽으로 6자*(1자가 30센티) 짜리 수납장袋戸棚이 있고

 

그 옆이 바쇼 후*(오키나와가 주산지인 식물, 바쇼 섬유로 짠 천)로 된 장지문으로

바로 옆으로 오고 갈 수 있게 되어있다

이 한 장의 칸막이를 확 열기만 하면 옆방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남에게 그런  무례를 굳이 할 정도로

중요한 소리가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때마침 더워지는 시기이니

마루 쪽은 항상 열어둔 채였다


마루는 원래 이 건물 전체에 길쭉하게 이어져 있다


하지만 환자들이 툇마루 끝으로 나와

서로를 다 보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일부러 두 병실마다 문을 따로 달아 경계를 삼았다


그것은 판자 위로 가느다란 횡목을 열십자로 걸친 세련된 것으로

청소하는 아이가 아침마다 걸레질을 할 때는

아래층에서 열쇠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이 문을 열어 가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문지방에 섰다

그 소리는 이 여닫이문 뒤에서 나는 듯하다


문 아래쪽은 두 치*(1寸은 1尺의 10分의 1로、약 3.03센티. 즉, 6센티 정도) 정도 틈이 있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소리는 그 후로도 자주 되풀이되었다.



어느 때는 5,6분씩 이어져서

나의 청신경을 자극하는 일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그 절반도 가지 않고 뚝 끊겨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언인지 결국 알 기회가 없이 지나갔다



환자는 조용한 남자였지만

때때로 한밤중에 작은 소리로 간호사를 깨우곤 했다


간호사는 기특하게도 나지막하게 한 두 번 부르면

기분 좋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며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  무언가 하는 듯했다.


어느 날 옆방이 회진 차례가 되었는데

평소보다 시간이 걸리는구나 싶더니


이윽고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그게 두 세 사람이 분담해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는 듯한

눅눅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마침내 의사의 목소리,

어차피 그렇게 간단하게 나을 리가 없으니까요 하는 말만이 확실히 들렸다.


그러고 나고 2,3일 지나,

그 환자 방으로 조심조심 드나드는 인기척이 있었지만

모두 자기가 하는 동작이 환자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가만히 하는 듯하더니

 

그 환자 자체도 그림자처럼

어느샌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 후에는 바로

이튿날부터 새 환자가 들어와

입구의 기둥에 하얗게 이름을 적은 검은색 표찰이 바꿔졌다.


앞서 말한 쓱쓱 하는 묘한 소리는 결국 확인하지 못한 채 환자가 퇴원해 버린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나도 퇴원했다

그리하여, 그 소리에 대한 호기심은 그것이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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