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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mupet Jul 21. 2021

시간으로 읽는 책

이런 날에는 이런 향기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다 문득 '이 책이 전에 읽었던 그 책 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예전에 읽던 책을 다시 펼칠 때면 드는 느낌, 10대, 20대, 그리고 30대까지도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없던 책들이 내 마음에 스며든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더 좋아지기라도 한 걸까? 그 반대가 상식적인 경우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운이 좋아 나의 뇌는 그 상식을 역행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발췌한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거였구나!

책 속에서 내 마음에 흘러들어온 것은 '삶', '살아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음악 명인이 카스탈리엔 졸업을 앞둔 요제프를 불러 며칠간 그의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때 그는 요제프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신성은 개념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네 안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야." - 유리알 유희, 106~107쪽


나에게 필요했던 건 노력이 아니라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말들을 살아낼 시간.

그 시간을 어느 정도 살아낸 지금, 이해가 되지 않던 말들이 이리도 마음을 움직이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잡던 시절에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허기진 듯 책을 읽어댔지만 그 많은 책들 중 제대로 이해하며 읽은 책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용을 먹어치운 게 아니라 무수히 많은 글자들만 씹어 삼켰던 것이다. 질겅질겅 씹어서 억지로 삼킨 글자들이 늘어나면 똑똑해질 줄 알았지만 대학 시절, 소위 운동권 동아리라는 곳에 들어가 사회과학서적으로 세미나를 하며 내 안에는 열등감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장이 되지 않고 생으로 날뛰는 글자들을 꾹꾹 삼키면서 문장을 먹는 척, 그 책의 의미를 문제없이 소화시키는 척했다. 생으로 삼킨 글자들은 결국 소화되지 못한 채 내 안에 남아 독가스를 뿜어댔다. 열등감, 죄책감이라는 독가스. 


'넌 거짓말쟁이야' 


대학을 졸업하고, 더 이상 그 어려운 책들을 다 이해하는 척, 다 아는 척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저 말만은 버릇이 되어 떼어낼 수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독가스 같은 저 말을 내가 나에게 되뇌게 되었다. 


다행이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다시 펼치게 되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던 책들 중 하나가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니. 


몰랐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었다는 걸. 나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유형이라고 나를 단정 지어왔다. 책 속의 글자만 억지로 삼키면서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유형이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선망하던 이들을 바라보며 꾸던 꿈을 나라고 여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면, 그건 아직 내가 살아내지 않은 시간이니 그 책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시간을 살면 될테니까. 내 마음에 스며드는 책은 충분히 그 시간을 살아낸 것이니 그 속에서 나에게 더해주는 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몸속에서 스멀스멀 향이 올라온다.

오늘 아침 몸에 바른 에센셜 오일의 향이다. 

페티그레인과 샌달우드.

지금 이 순간과 참 잘 어울리는 향이다. 

페티그레인의 향기는 어딘가 부족한 것 같고, 아직은 더 배워야 할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순간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 


"정말 그럴까? 네 안에 있는 걸로도 이미 충분해~ 일단 해봐. 직접 해봐야 진짜 부족한 게 뭔지 알 수 있지!"


사실 생각이, 열망이 행동이 되지 못하는 건 불신 때문인 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순간들 속에서 페티그레인의 향기는 말한다. 

"너는 너를 못 믿니? 나는 너를 믿어."

"그게 말이 돼? 뭘 보고 날 믿는다는 거야?"

"네 안에 네가 가지고 있는 게 나한테는 보이는 걸."


샌달우드는 나를 그 안으로 데리고 간다. 페티그레인이 하는 말을 의심하는 나의 손을 잡고, 직접 나를 그 안으로 데리고 가는 게 샌달우드의 향기다. 

이 책을 읽으려고 오늘 아침 페티그레인과 샌달우드를 선택한 것일까? 책과 향기에도 궁합이 있는 걸까? 

이것 참 괜찮다!







제가 읽은 <유리알 유희>는 '민음사'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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