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 아플까 봐 두려워서 마음을 유리병에 담아놓은 적이 있는가?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당신 가슴이 아닌 유리병에 담겨 있지는 않은가?
마음을 유리병 안에 넣자 소녀는 신기하게도 정말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아픈 마음 말고 다른 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관심 어린 사랑도, 기쁨도, 열정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녀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픔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소녀는 마음을 담은 유리병을 목에 걸고 다녔다. 유리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목이 좀 아파도 마음만은 안전하니까!
올리버 제퍼스, <마음이 아플까 봐> 중에서
당신은 인생에서 저 빈 의자를 마주한 적이 있는가?
빈 의자는 소녀처럼 소중한 이의 죽음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 받은 상처나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빈 의자에 비해 소녀가 너무나 작고 왜소해 보이듯이 우리도 상처 앞에서 아주 작고 초라했을지 모른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이 아픔을 온전히 다 느끼다가는 죽어버릴 것 같아.'
저렇게 커다란 빈 의자 앞에 서 있던 적이 있다. 빈 의자 앞에서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 평온했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정말 멘탈 갑인 줄 알았다. 나의 상처를 아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냐며 신기해할 정도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너무 아파서 나도 저 소녀처럼 마음을 유리병 안에 넣었다는 걸. 마음을 유리병 안에 넣어두니 도통 내 마음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편했다. 누구나 혀를 내두를 만큼 힘든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상황이 차츰 나아지고 상처가 아물 만큼 시간이 흐르자 아무렇지 않은 그 마음이 문제를 일으켰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그 '아무것'에는 삶의 기쁨, 사랑, 살고자 하는 마음과 의욕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끼기 싫은 건 아픔뿐이었는데 나는 기쁨도, 사랑도, 의욕도 느낄 수가 없었다.
무감각, 이건 우울증의 다른 말이었다.
다행히 나에겐 죽고자 하는 마음보다 생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마음이 꺼내고 싶어 졌다. 소녀처럼.
병에 넣을 때 워낙 쉽게 넣어서 금방 빠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마음이란 놈이 당최 병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유리병에 넣어두면 마음도 그때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도 마음은 수많은 감정들을 만들어내고 그걸 끌어안고 있었다. 감정이 없어진 게 아니라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넣을 때보다 더 크고 무거워진 이 마음을 어떻게 꺼낸담?
그림책 속의 소녀는 망치로 병을 부숴보기도 하고 톱으로 썰어보기도 한다. 높은 데서 떨어뜨려보기도 한다. 어떤 방법을 써도 마음이 담긴 유리병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마음을 결국 못 꺼냈냐고? 그랬음 이건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답지 않잖아? 마음은 유리병에서 나와 다시 그 소녀의 가슴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꺼냈냐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마음을 꺼내고 싶게 만든 사람이었다. 소녀의 어린 시절을 닮은 꼬마 아이. 그 아이가 유리병에서 소녀의 마음을 꺼내 줬다. 그 작은 손을 유리병에 넣어서 마음을 쏙 빼줬다.
올리버 제퍼스, <마음이 아플까 봐> 중에서
오렌지 컬러는 상처 받은 순간 멈춰버린 시간을 상징한다. 소녀의 어린 시절을 닮은 꼬마 아이, 그 아이는 어쩌면 소녀가 상처 받은 순간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힌 아이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어른과 다르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 아이 안에 꿈틀대는 놀이 본능, 생의 에너지와 기쁨, 환희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그 본능대로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참고 있었을까? 그 작은 몸 안에서 터져 나오는 본능적인 기쁨과 열정을 도대체 어떻게 누르고 있었을까?
"더 이상은 못 기다려!"
꼬마가 어느 순간 소녀 앞에 나타난다.
이 꼬마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때, 이 꼬마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할 때 꼬마의 작은 손이 유리병 안에 넣어둔 마음을 다시 꺼내준다. 그리고 꼬마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멈춰버린 시간들이 계속 흐르는 시간들과 뒤엉키면서 엉망이 되어버린 우리의 타임라인이 다시 풀리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다시 뜨개질을 시작한다. 우리의 생을 다시 짜기 시작한다.
상처 받은 사람이 할 일은 상처 받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가? 내가 상처 받기 전 어린아이였을 때 내 안에는 어떤 생의 에너지가 넘쳐흘렀는가?'
삶이 온통 놀이였던 시절, 거기서부터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때 상처가 진짜 아물기 시작한다.
오렌지 컬러가 끌리는 당신, 아픔을 느끼기 싫어 마음을 유리병에 넣어두었는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 삶은 그래서 행복한가?
당신은 원래 흥이 넘치는 사람이다. 삶 자체가 기쁨이자 환희인 사람이다.
그만큼 유리병에 넣어두었으면 이제 됐다.
상처 받은 시간 속에 갇혀있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부탁해보자.
"내 마음을 유리병에서 좀 꺼내 주라."
<올리버 제퍼스, <마음이 아플까 봐> 중에서
[키르케고르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는 깊은 절망 상태에 있더라도 좋은 상황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누구도 행복하면서 동시에 우울할 수는 없겠지만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행복은 절망의 가장 적합한 은신처'라고 했다. 요컨대 행복은 영적인 안녕을 판정하기에 적절한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든 마리노, <나로 존재하는 용기>
지금, 꽁꽁 언 당신의 마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당신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얼음 속에 자신을 가둬놓은 건가요? 쌓이다 쌓이다 빙하가 되어버렸어요!
당신 마음 속 놀이터에도 눈이 소복히 쌓여있네요.
얼음이 다 녹아버리면 그 물이 바다가 되어 거친 파도로 당신을 흔들까봐 두려운가요?
하지만 잘 기억해보세요. 당신의 바다는 사납지 않았어요. 모래 놀이 하기에 딱 좋을만큼 부드러운 모래와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곳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