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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이 컬러에 끌리나요?

by Redsmupet
B81 핑크/핑크


바틀명 : 조건 없는 사랑

바틀을 섞으면 나타나는 컬러 : 핑크

기조 : 자신과 타인을 향한 최고의 연민, 보살핌과 사랑.

확언 :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키워드 : 조건 없는 사랑, 여성성, 따뜻함, 보살핌, 자기 수용, 자비, 친절, 상처 입기 쉬운, 사랑을 갈구하는, 인정받고 싶은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날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우주 한가운데에서 별 사이를 걸어 다녔습니다.

별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 사노 요코, <태어난 아이> 앞부분


그림책 속의 아이를 볼 때면 핑크의 메시지가 생각난다. 태어나지 않아서 어떤 아픔도, 고통도 느낄 필요가 없는 아이를 따라가다 보면 당신도 핑크의 메시지를 떠올릴지 모른다.


당신은 핑크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

어떤 사람은 핑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핑크가 너무 여려 보여서 싫어한다.

핑크가 지닌 부드러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핑크가 여성성이 내포한 취약함을 상징한다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가?


나는 핑크를 좋아한다.

그런데 핑크를 좋아하는 걸 숨기고 싶어 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은 그런 순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핑크를 좋아하는 내가 왜 핑크를 좋아하지 않는 척하게 될까?"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의 주인공 엘을 보면서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온몸으로 핑크 핑크 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주인공 엘! 그 덕분에 엘은 매번 세상이 가진 편견의 벽 앞에 서게 된다. 그 벽 앞에서 당당한 엘을 보며 제일 먼저 올라오는 감정은 '거부감'이었다.


"저건 좀 너무 과하지 않아? 헉!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핑크야!", "어쩌려고 저래?"


하지만 점점 영화에 빠져들면서, 세상이 '금발은 아니야'라고 말하는데도 '핑크는 여기에 맞지 않아'라고 밀어내는데도 자신의 핑크를 포기하지 않는 엘에게 마침내 감탄하게 된다. 마음속에서 통쾌함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내가 엘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


"나는 엘처럼 편견이라는 벽 앞에서 당당하게 설 자신이 없는걸."


그냥 그 벽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게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싶었다. '온전한 나'를 수용하고 '나'로 살기보다 세상이 '그 정도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나로 사는 게 마음 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대고 "이게 나야"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어떤 모습이면 인정해줄 거야? 사랑해줄 거야?"라고 물어보며 맞추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걸 알아채기 전까지는 그랬다.


세상에 맞추면 그 세상이 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독이 채워질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도 세상이 나를 충분히 사랑해주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해졌다.


"콩쥐에게는 밑 빠진 독을 막아줄 두꺼비라도 있지! 왜 나한테는 그 흔한 두꺼비 한 마리 없는 거지?"


사실 나에게도 두꺼비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말이다. 내가 필요할 때 두꺼비가 '짠~!!'하고 나타나지 못한 건 내가 두꺼비를 골방에 가둬놓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절대로 나오면 안 돼!!"라며 문에다 대못을 몇 개나 박아놓고서 엉뚱한 데서 두꺼비를 찾고 있었다. 나의 두꺼비는 나의 핑크였다. 내가 감추고 싶은 나의 취약함. 여성성이 내포하는 따뜻함, 수용, 개방성, 부드러움, 내 안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나의 감정들. 세상 사람들이 소위 '약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 강해지려면, 이기려면 숨기라고 가르치는 것들.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있는 나의 말캉한 부분들.


브레네 브라운은 그녀의 책 <마음 가면>에서 취약성이 '사랑, 소속감, 기쁨, 용기, 공감, 창의력의 원천이며 희망과 공감, 책임감과 진정성을 잉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취약하지 않다는 환상'이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 믿지만 사실 그건 '자신의 진짜 보호막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자신의 진짜 보호막은 '사랑'이다. 내가 어떤 바보짓을 해도 손가락질하지 않고 어깨를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따뜻한 위로와 변함없는 신뢰. 내가 독에 채우고 싶었던 것, 세상으로부터 받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는데, 이걸 가져오는 게 취약성이라니! 두꺼비에게 새삼 미안해진다.

"널 그렇게 오랫동안 골방에 가둬두는 게 아니었어. 그동안 널 몰라봐도 너무 몰라봤어. 미안해."


골방 문이 열리자 두꺼비들이 빛으로 팔짝팔짝 뛰어나온다. 금이 간 나의 항아리를 발견하자 한 마리 두 마리 항아리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두꺼비가 금이 간 부분을 모두 제 몸으로 막자 항아리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찰랑찰랑 차오른 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 바가지씩 퍼줘도 될 만큼 가득해진다.


두꺼비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다.

"그림자"

내가 보기 싫다고 밀쳐놓은 나의 그림자가 나의 두꺼비다. 나의 핑크다.

그림자에 빛을 비추면 그림자는 빛이 된다.

핑크빛이 환하게 반짝일 때 핑크의 취약함은 '사랑'이 된다.

부드러운 속살을 온전히 드러내서 나만큼 연약한 사람이 와서 안겨도 안전한 품이 된다.

공격하겠다고 날을 세우며 달려들다가도 따뜻함에 날카로움이 녹아버리는 따뜻한 품이 된다.


핑크빛에 끌리는 당신은 취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에게 못난 부분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

그 못난 부분도 '나니까'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타인의 못난 부분도 온전히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어느 마을 공원에서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된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따라온 강아지가 여자 아이를 문다. 여자 아이가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간다. 여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는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준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나도 반창고 붙이고 싶어."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반창고가 붙이고 싶어 졌습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반창고, 반창고!"하고 외쳤습니다.


"엄마!"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태어났습니다.]


- 사노 요코, <태어난 아이> 뒷부분




KakaoTalk_20201029_210207749.jpg 사실 핑크가 레드보다 더 강하다는 것 알고 계시나요?



KakaoTalk_20201030_141430007.jpg 아무리 봐도 강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KakaoTalk_20200928_163524151.jpg 하지만 가냘파 보이는 발레리나의 맨발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뀔 거예요. 수많은 상처로 뒤덮여 기형이 된 발, 그럼에도 발레리나의 춤은 멈추지 않습니다.



<Photo by 홍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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