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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ul 21. 2023

28번 트램 타고 리스본 한 바퀴

리스본의 명물 28번 트램을 타면 겪을 수 있는 일

  리스본의 알파마 지구는 좁은 언덕길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림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붉은 지붕의 아름다운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면 숨이 차고 종아리가 땅겨 온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트램이다. 리스본의 명물 28번 트램은 선명한 노란색이나 붉은색 옷을 입은 한 량 짜리 노면 전차로 귀엽고 앙증맞게 생겼다. 사람들은 걷다가 트램이 지나가면 너도 나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남긴다. 알파마 지구를 힘들지 않게, 덜 걸으면서 다니고 싶을 때나 관광객 기분을 내고 싶을 때는 트램을 타보는 것도 괜찮다.


  리스본의 트램은 다른 대중교통에 비해 요금이 비싼 편이다. 2023년 1월 기준으로 매트로 1회권이 1.65유로, 버스가 2,3유로인데, 트램은 1회권이 3유로(약 4,000원 정도)나 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리스보아 카드(1일권  21유로)나 비바비아젬 교통권(1일 6.6유로)이 있을 때, 알파마 지구 여행 계획을 잡아 28번 트램을 마음 놓고 여러 번 타는 것을 추천한다.


<리스본 거리의 명물 트램>

  비바비아젬 1일권을 사서 트램을 타고 알파마 지구에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인 세뇨라 두 몬트 전망대를 갔다가 성 조르제 성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다시 트램을 탔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트램 안에 관광객이 꽉 차 있었다. 좁은 공간 안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서 있으니 답답하고 불편했다.


  하필이면, 앞에 앰뷸런스가 어느 집 앞에서 정차한 채 전차 길을 막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려는 것 같았다. 응급 환자면 시급하게 움직여서 이송을 해야 할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5분이 지나고, 7분이 지나도 환자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편도 1차로인 전찻길을 앰뷸런스가 막고 있으니 내가 탄 트램은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트램 뒤로도 다른 트램과 승용차들이 줄줄이 발이 묶였다. 이색적인 트램을 타고 낭만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이런 복병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환자를 태운 앰뷸런스가 출발했고, 우리 트램도 움직일 수 있었다.



<앰뷸런스가 길을 막아서 트램이 꼼짝 못하게 된 상황>


  28번 트램을 탈 때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소매치기가 많다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백팩은 메지 말고, 가방은 몸의 앞쪽으로 두는 것이 안전하다. 나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귀중품이 든 보조가방에 자물쇠까지 채우고, 물이나 책과 같은 큰 짐은 백팩 대신 에코백에 넣어서 가지고 다녔다. 보조가방을 손으로 꽉 붙든 채 긴장감을 늦추지 않아서 그런지 다행히 별일 없었다.



  다음 날 오전에 비바비아젬 1일권 사용 시간이 끝나기 전에 28번 트램의 낭만을 제대로 느껴보고자 숙소 옆인 바이사 치아두역 근처에서 트램을 탔다. 더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오른쪽 창쪽에 앉아서 리스본 시내를 구경하며 한 바퀴를 도니 40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28번 트램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호시우 광장 근처에 있는 호텔 문디알 앞에 도착했지만, 그대로 앉아서 계속 트램을 탈 수는 없다. 종착지에서는 모두 내린 후 50미터쯤 앞에서 다른 트램을 타서 교통권을 새로 찍어야 한다. 트램을 타려는 줄이 너무 길어서 매트로로 바이사 치아두 역까지 이동한 후 근처 트램 정거장에서 28번 트램을 다시 탔다. 전망이 가장 좋았던 세뇨라 두 몬트 전망대를 다시 가서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트램 출발지인 호텔 문디아 앞에서 타는데, 굳이 여기까지 가서 탈 필요는 없다. 오히려 너무 줄이 길어 자리를 잡기도 힘들고 한참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보다는 바이사 치아두역 근처나 아우구스타 거리 근처에 있는 트램 정류장에서 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편하다. 처음 탔을 때는 서서 가더라도 리스본 성당이나 산타루치아 전망대쯤 도착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리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앉아서 갈 수 있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출발지가 아닌 정거장에서 탔는데도 자리가 있어서 바로 앉았다. 확실히 토요일 오후와 다르게 사람도 적으니 편안하게 트램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개방형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신선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테주강과 하늘은 티 없이 파랗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번엔 또 웬일인지 잘 가던 트램이 또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낭만적인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앞을 보니, 검은색 차 한 대가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편도 1차로 좁은 길에서 차를 돌리려다 공간이 안 나와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내가 탄 트램과 그 뒤로 수많은 차들이 또 길에 멈춰 섰다. 검은색 차주는 진땀을 흘리며 상기된 얼굴로 옆쪽으로 난 골목으로 겨우 차를 옮겼다. 5분 정도 돼서야 겨우 길이 뚫렸다.


  어허, 28번 트램의 낭만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알파마 지구의 비좁은 언덕길이 자꾸만 방해를 하는군. 결론은, 28번 트램은 성 조르제 성이나 세뇨라 두 몬트 전망대처럼 높은 지대를 오갈 때 한 두 번 즐기며 만족하는 걸로.


<알록달록한 트램이 있어 더 운치있는 리스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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